[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오주연 기자]"본래 이 정육점 칼이 2~3일에 한 번 씩 갈아줘야 하거든. 그런데 요즘에 내가 6개월 만에 칼 간다는 사람도 봤어. 어이가 없더라고. 식당이 안되니까 정육점이 안 되고. 그러니까 칼갈이가 죽겠어. 내가 죽겠어."
10일 오후 주말을 맞아 손님들로 북적여야 할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 인적이 끊긴듯 한 고요함 속에서 도둑 고양이들만 자투리 고기를 찾아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30년간 마장동에서 칼을 갈아 온 상인도 일이 없어 넋을 놓고 있었다. 일거리가 없어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한 상인은 손님인줄 알고 취재진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이내 실망하며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인들이 대통령을 얼마나 원망하는지 몰라. 장사 접은 친구들이 너무 많아. 장사가 안되서 나가서 직장 구하려고 해도 일자리가 없대. 여의치 않으니까 또 다른 장사를 하더라고. 그러다 또 망하고. 지금은 집에서 놀아. 그런데 전세 값이 계속 오르니까 지금 너무 우리가 너무 허덕이고 있어. 이거 봐, 지금 고기가 안 팔리니까 말라가잖아. 정말 속상해 죽겠네."
대형마트에서 9년간 일을 하다 전통시장으로 들어왔다는 한우나라 직원은 "처음 마장동에 발을 들여놨을 때와 비교할 때 시장 분위기가 참혹할 정도로 침체됐다"고 설명했다.
프랜차이즈 업체에 족발을 납품하는 한 상인은 "외상값이 늘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외상값이 정말 많이 밀렸지. 예전보다 한 5배는 외상이 늘어난 것 같아요. 식당들이 개업을 하면 죄다 4~5개월 만에 망해버리고. 그러면 우리는 또 돈을 못 받아요. 오래 장사를 해야 우리도 같이 잘 되는데 외상값을 못 받아서 아주 죽겠어요. 안 망하고 계속 하는 업체들도 점포세 내고 나면 우리 외상값을 못 주니까···. 정말 미칠 노릇이죠."
마장동에서 수십년간 매점을 운영해 온 한 상인은 전통시장 상인들이 매기는 MB 5년의 참혹한 성적표를 매일 보고 듣는다고.
"대통령 당선됐다고 할 때 여기 마장동에서는 축제까지 벌였지. 여기 보이죠? 여기 천장에 비 막아주는 이거를 지금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만들어 준 거거든. 우리가 그 때 경제 대통령이 됐다고 얼마나 기대를 했어.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 이름 꺼내면 맞아 죽지. 대통령 되고 나서는 코빼기도 본 적이 없어. 상인들이 지금 주말인데 봐봐. 다 문을 닫고 벌써 술을 먹고 있잖아. 장사가 안되니까 상인들이 술만 먹어."
주말을 맞아 손님들로 북적이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겉보기에는 그나마 상황이 나아보였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상인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30년간 수산시장에 몸을 담아온 한 상인은 "30년 장사 중 지금이 최악"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물가는 이전 정부 때보다 몇 배는 더 비싸졌지. 일본 방사능이다 뭐다 해서 사람들이 회안먹지, 작년에는 또 물 온도가 너무 높아져서 고기가 없었어. 자리 반납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에는 자연산이고 뭐고 양식도 잘 안돼. 그런데 지금 나라에서 여기 상인들한테 해 준게 뭐가 있어? 지금 쭈꾸미 철인데 이게 1kg 작년에는 1만5000원이었거든. 지금 2만원이 넘어요. 사람들이 '안 먹고 만다' 이러면서 가버린다고."
상인들은 MB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수산식품 유통업을 하는 상회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정치적 쇼를 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다 대기업에 넘겨준다"면서 불만을 토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30년간 수산물 유통일을 했는데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져. 대기업들이 다 씨푸드 사업에 손을 대잖아. IMF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어. 그때까지는 대기업들이 여기에 손을 안댔으니까. 경마장이나 여러 공기업 공공단체에 여기 상회들이 다 납품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 대기업들이 시설 지어주고 낚아채 가 버리니까. 대기업들이 생산해서 수출을 해야지 왜 작은업체들이 하던 내수시장을 뺏아가냐고. 우리는 대기업들이 안하는 틈새, 빈틈시장만 먹고 있는거야 지금. 심부름꾼 역할로 전락했지. 정부도 '전통시장 살린다' 말만 하지. 뒤로는 다 대기업에 밀어주고. 내가 이 나이에 벌써 쉴 수도 없고···. 암담해."
같은 시각 가락동농수산물시장 청과시장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형형색색의 봄 제철 과일들로 물들었지만 지갑을 열는 손님들은 드물었다. 3명 중 1명은 이리저리 가격을 재며 '비싸다'를 연발하기 일쑤였다.
소비자물가지수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정부 발표와는 달리 실제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물가'와 '경기' 얘기에 진저리를 쳤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경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채소상인 양모(55)씨는 물가가 이 정부 들어 2배 이상 뛰었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하나는 잡겠다고 했었지 않았나. 다 거짓말이다. 이를테면 사과 한 박스에 3만원에 들여왔다면 지금은 5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가격이 올라가니 손님들 발걸음도 뚝 끊겼다. 저렴해야 재고없이 빨리빨리 회전이 되는데 비싸니까 사람들이 안사려고 한다. 과일은 쟁여두면 썩으니까 마진 얼마 남지 않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팔 수밖에 없다. 요새 이런 일이 허다하다."
다래, 냉이 등 봄나물 판매하고 있는 채소상인 임모(60)씨도 MB정부의 물가관리, 민생안정에 낙제점을 매겼다.
"배추 장관, 무 차관 만들어봤자 다 부질없는 짓이다. 채소·과일 가격을 억지로 잡는다고 해서 잡히는 줄 아나본데 전혀 모르는 말이다. 채소랑 과일은 공급 물량에 따라 가격 편차가 굉장히 심하다. 지난 여름에 한 달 넘게 장마가 지속되고 겨울에는 한파가 이어져서 작황이 형편없었다. 이 때문에 과일은 물량이 없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잡겠다고 해서 지금 잡혔나? 물가는 정치랑 다르다. 괜한 말로 표심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가잡는 말, 다 쉰 소리다."
전통시장 상인들의 본 MB정부의 물가관리 및 민생안정의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었다. 대통령 이름만 꺼내도 고개를 돌려 버리는 상인들. 2011년 한국의 식품물가 상승률은 7.9%로 OECD국가 31개국 중 2위, 소비자물가 상승률(4.0%)은 4위. 정부가 수치로 느끼는 위협을 상인들은 맨몸으로 견디고 있었다.
박소연 기자 muse@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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