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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위안부, 세상은 잊어도 소설은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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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지난해 12월 14일은 수요일이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10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손에는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위안부 할머니 힘내세요'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 최장기 단일 주제 집회인 '수요집회'였다. 매주 수요일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모여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려 온 수요집회는 이 날 1000회를 맞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과연 우리는 일반군 위안부의 실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재일작가 양석일의 신작 '다시 오는 봄'은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정면으로 거론하는 책이다.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한 1988년작 '피와 뼈'로 재일동포 1세에서 2세로 유전되는 극악스러운 삶의 유전을 그린 양석일이 일본군 위안부에게 시선을 돌린 것이다.
 이전 작품에서도 두드러졌던 작가의 냉정한 시선은 '다시 오는 봄'에서도 계속된다. 이 책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다. 작가는 집필 전 방대한 자료 조사와 현지 답사, 실존 인물들의 취재를 거쳤다고 밝힌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설은 1922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난 순화의 삶과 당시 전쟁 상황을 교차하며 진행된다. 가난한 소작농의 딸이었던 순화는 중국 상하이의 방적공장에서 일하게 해 준다는 일본인 순사의 제안에 따라나서지만 도착한 곳은 난징의 위안소였다.

 '다시 오는 봄'은 직설적이다. 순화의 몸에 가해진 폭력을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는 것. 순화는 난징의 위안소에 도착하자마자 56명의 병사에게 유린당한다. 중국 난징에서 미얀마 랑군과 라멍까지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위안부들을 상대로 벌어진 학대와 폭력은 읽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하다. 순화와 일본군 위안부들이 전장을 따라 끌려 다니며 인간이 아닌 기계나 짐승으로 소비되고 버려지는 과정을 소설은 빠르게 추적한다.

 피해자는 순화뿐이 아니다. 순화와 함께 끌려 온 다른 위안부들의 이야기들도 냉혹하게 그려진다. 살해당하거나 자살하거나 병들어 죽는 위안부들의 모습은 '인류 최대의 성범죄'인 일본군 위안부의 폭력성을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환기시킨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폭력을 전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것은 훼손되었으나 죽지 않는 인간의 생명력이다. 순화와 다른 위안부 동료들은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로 버틴다.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이 자결을 강요하는 순간에 그들은 참호를 뛰쳐나온다.
 이 생명력은 우리에게 더 큰 숙제를 안긴다. 책은 순화가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상봉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 뒤 순화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위안부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른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 정부마저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해 왔다. 그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았지만 사회는 그들에게 '죽음과도 같은 삶'을 요구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돼 있던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171명이 세상을 떴다. 지난 22일에는 1010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해결의 기미는 아직 없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다시 오는 봄/ 산책/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1만4800원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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