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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얀 현기증, 여기쯤 길을 잃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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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재~은대봉~~함백산~만항재 8km 눈꽃 트레킹 첩첩첩 산산산 장관

[여행]하얀 현기증, 여기쯤 길을 잃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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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설악산과 오대산, 대관령에서 뻗어온 백두대간이 남하하다 태백 인근에서 불끈 솟구친 산이 있다. 바로 함백산(1573m)이다.

높이로 따지면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덕유산(1614m), 계방산(1577m) 다음이다. 인근 태백산(1567m)의 위용에 눌려 존재감이 좀 덜 하지만
함백산은 백두대간의 주능선에 위치해 있어 '산꾼'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함백산은 태백과 정선의 경계에 솟아있다. 두 도시를 이어주는 능선을 넘나드는 고갯길 중 대표적인 곳이 두문동재(1275m)와 만항재(1330m)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고개를 넘는 도로들은 국내 포장 도로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을 지나는 것들이다. 만항재를 지나는 414번 지방도는 해발 1330m를, 두문동재를 가로지르는 옛 국도 38호선은 해발 1268m의 고개를 넘는다.

새해 첫날, 두문동재를 거쳐 은대봉(1442m) 함백산, 만항재 쪽으로 내려서는 눈길 트레킹에 나섰다. 백두대간 종주길의 한 구간이다. 장쾌하게 펼쳐지는 첩첩 설산들을 좌우로 거느리고 오르내리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길이다. 해발 1400~1500m의 산길이지만 높은 고도에서 출발해 가파른 구간은 많지 않다.

산행 들머리는 두문동재다. 이곳에서 함백산 정상까지는 5.3㎞,다시 만항재까지 2.4㎞를 더하면 8㎞에 가깝다. 눈길에 넉넉히 4시간 정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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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재는 봄부터 가을까지 무수히 피고 지는 분주령ㆍ금대봉의 야생화 탐방길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이젠ㆍ스패츠를 차고 은대봉으로 향했다. 섭씨 영하 15도. 바람이 거세지 않아 걱정했던 만큼 매서운 추위는 아니다. 그래도 손끝 발끝은 출발 전부터 이미 얼었다.
은대봉까지 1.1㎞ 코스는 대간마루의 이름값을 하듯 제법 가파르다. 천천히 에둘러가는 길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으로 덮여 있고,곧장 치고 올라가는 길에만 아이젠 자국이 어지럽다.

기대했던 상고대(나뭇가지 등에 서리가 얼어붙어 눈꽃처럼 핀 것)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숲은 여전히 눈밭이다. 봄철 연분홍 꽃잎을 곱게 밀어올렸을 철쭉 가지에도 길가에 낮게 몸을 움츠린 산죽의 푸른 잎에도 순백의 솜털 옷이 달렸다. 여기에 쪽빛하늘이 멋진 조합을 이루며 잠시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한다.

다져진 등산로를 살짝 벗어나면 금세 무릎 언저리까지 푹푹 파묻힌다. 자작나무와 참나무 숲길을 지나 작은 표석이 세워진 은대봉에 이르러서야 손도 발도 풀려 한결 걸을 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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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공터에서 잠시 다리쉼을 한다. 사방이 나무에 가려 조망은 그리 좋지 않은 편. 이후 1~3 쉼터까지는 내리막과 오르막이 번갈아 펼쳐진다.

제2쉼터는 정암사의 암자인 적조암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길이 눈에 덮였을 경우 능선을 포기하고 적조암 쪽으로 내려설 계획이었지만 산행객들이 다져놓은 길이 뚜렷했다.

멋진 풍광은 중함백을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치고 오르면서 나타난다. 응달진 언덕 일부에선 눈이 무릎까지 빠져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 발을 집어넣고 또 빼내야 한다.

고사목들 늘어선 능선에 올라서니 뒤편으로 광활한 산경이 펼쳐진다. '첩첩첩 산산산'이다. 대간 능선 트레킹은 이런 매력이 있어 좋다. 멀리 산자락 위편엔 새하얀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서 있다. 삼수령(각각 동ㆍ서ㆍ남해로 흘러드는 오십천ㆍ한강ㆍ낙동강의 발원지) 인근의 매봉산 자락에 세워진 현대판 풍차다. 한때 백두대간의 정기를 훼손한다며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것이 어느새 풍경이 됐다.

사나워진 바람을 등에 지고 뒤돌아보니 하이원리조트 쪽 산줄기와 비좁은 골짜기를 따라 들어선 정선 고한읍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중함백 정상은 해발 1505m. 정면으로 방송 중계용 철탑들이 세워진 함백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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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는 줄곧 급경사다.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고 허벅지가 팍팍해질쯤에야 함백산은 비로소 제 몸을 허락한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 바람이 땀을 씻는다. 차긴 하되 더없이 맑고 상쾌한 바람이다. 온갖 잡념들도 한줌 남김 없이 바람에 실어 보낸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백두대간의 힘찬 줄기를 품는다.

함백산엔 중계탑 주변까지 찻길이 나 있어 봄~가을엔 손쉽게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눈이 쌓이는 한겨울엔 4륜구동 차량도 무용지물이다. 눈길을 걸어올라야 만날 수 있는 겨울 함백산 정상의 풍광은 그래서 각별하다.

천천히 이곳저곳을 돌아본다. 대간의 고산준봉들이 거칠 것 없이 줄달음치고 있다. 머릿속에 관념으로만 머물던 '일망무제'가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백두대간길을 따라 은대봉, 싸리재, 금대봉이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고, 서쪽으로는 두위봉과 백운산, 장산이 산너울을 이룬다. 맑은 날에는 동해의 일출까지 감상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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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후려치는 매서운 바람에 흐르는 눈물 씻고 또 씻으며 바라보노라면, 갈 데까지 다 나아간 하늘과 땅이 어떻게 서로 아스라이 만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을 듯도 하다.

정상에 오래 머무는 것은 칼바람이 용납하지 않는다. 30분쯤 사진을 찍는 동안 손끝 발끝은 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영월 쪽을 향해 굽이쳐 오르는 만항재 자락 산길을 굽어보며 산을 내려간다. 산행의 재미는 이제부터다. 내내 대간의 마루금을 따르기 때문이다. 산줄기 양편으로 펼쳐지는 풍치를 두루 감상하며 내려서도 정상에 선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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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에서 도로를 만나고 길을 건너면 다시 야트막한 구릉의 숲길로 인도된다. 설원 트레킹 코스로 손색없는 눈밭에서 뽀드득 소리가 무척 예쁘게 난다. 그리고 곧 만항재에 이른다.

만항재를 찾았다면 '오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꼽히는 정암사를 들러보자.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절집을 뜻하는데 정암사에는 절집 뒤편 산자락에 세워진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육화정사 옆에는 가지마다 매달린 빨간 마가목 열매는 마치 순백의 도화지에 떨어뜨린 선명한 붉은 잉크처럼 짜릿한 풍경을 전해준다.

태백ㆍ정선=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를 갈아타 제천 나들목으로 나와서 영월로 가는 38번 국도를 탄다. 정선에서 태백으로 관통하는 두문동재터널 앞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옛길을 따라 고갯마루까지 올라가면 두문동재에서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다. 고개 정상에서 왼쪽으로는 금대봉을 지나 대덕산을 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이 은대봉을 지나서 함백산으로 가는길이다. 태백시 문화관광과 (033)550-2085

△먹거리= 태백에는 육질 좋은 한우를 연탄불에 구워먹는 식당이 많다. 태성실비식당식육점(033-552-5287)과 소문난 한우실비(033-552-8893), 경성실비식당(033-552-9356)이 유명하다. 고등어, 갈치조림과 두부조림을 내놓는 초막고갈두(033-553-7388)도 추천할 만하다.전골처럼 국물이 있는 닭갈비도 태백의 별미다. 승소닭갈비(033-553-0708), 김서방네닭갈비(033-553-6378) 등이 맛깔스럽게 음식을 내놓는다.

△잠잘곳=스키장이 있는 하이원리조트와 오투리조트가 가족 단위 숙소로 좋다. 시내에 패스텔 모텔 등 깨끗한 모텔이 많다.

△볼거리=27일부터 2월 5일까지 10일간 태백산도립공원내 당골광장에는 초대형 눈조각을 전시하는 눈꽃축제가 열린다. 소도동의 태백체험공원은 탄광지역 주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낙동강이 시작되는 황지연못과 예수원, 매봉산 바람의 언덕, 철암마을 등도 둘러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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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동 남부마을 벽화=태백시 상장동 남부마을은 광산촌의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지난해 7월 시작되어 6개월간 진행된 벽화작업으로 인해 현재는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에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전설 속의 개 '만복이'를 비롯한 70여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남부마을의 벽화는 유행처럼 그려지고 있는 다른 지역의 벽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려웠던 시절의 석탄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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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으로 퇴장할 '스위치백'=태백시 통리역과 삼척시 나한정역 사이의 영동선 철길은 급경사로 인해 지그재그 형으로 설치되어 있는 국내 유일의 스위치백(switchback) 구간이다.

스위치백은 '자세를 반대로 바꾸다'는 뜻으로 열차가 가파른 산길을 통과하기 위해 지그재그 형태로 이동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 구간에서 열차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통과한다.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이 스위치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터널공사가 완료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올해가 이 열차를 타볼 수 있는 마지막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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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고도에 들어선 풍력발전기, 귀네미마을=해발 1,000m에 자리한 전형적인 산촌마을인 귀네미마을은 정감록에 피난처로 기록된 마을이다.

태백 쪽에서 올라오는 외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여름에는 마을을 둘러싼 가파른 산을 뒤덮는 고랭지 배추밭(65만3천 평방미터)의 이색적인 풍경으로 유명하고, 겨울엔 눈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일품이다.

이 귀네미마을에 풍력발전기가 들어서고 있다. 모두 11기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설 예정이며, 현재는 3기의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었다. 모두 완공되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 잡을 예정.

△5억년전 고생대 지층 위에 자리한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고원지대 '태백'은 아이러니하게도 5억년 전(고생대 캄브리아기)엔 얕은 바다였다. 지금도 삼엽충, 완족동물, 조개류, 복족류, 필석류, 두족류 등등 고생대의 화석들이 지층 곳곳에 남아 있는 태백에서도 고생대 지층이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은 천연기념물 417호로 지정된 '구문소' 일원이다. 구문소 인근 고생대 지층에 세워진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지구가 탄생한 46억년 전부터 선캄브리아시대,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까지 시간순서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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