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face 2011]올해의 인물 안철수, 잡스 그들의 키워드는 革新
◆헌 정치를 철수시키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사, 프로그래머, 벤처기업인, 대학교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프로필을 채우고 있는 단어들이다. 1962년생으로 쉰 살인 한 사람이 거쳐 온 직업치고는 많은 편이다. 올해 안 원장은 이 프로필에 '서울시장'을 더할 수 있었다. 그동안 정치권의 숱한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가 돌연 지난 10ㆍ26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뜻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세상의 이목이 집중됐고 50%를 넘나드는 지지율에 정치권은 뒤집혔다. 결국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며 출마 의사를 접었지만 오히려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후 본인의 부인에도 그의 행보는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정치적'으로 해석됐다.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공익'이라는 가치는 다시금 조명 받았고 '안철수 현상'을 만들었다.
올해 우리나라를 뒤흔든 '안철수 현상'은 그가 의대 조교 시절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한 1988년 시작됐다. 그는 "학생을 27년 동안 하면서 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백신 프로그램 배포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처음에는 비영리 공익법인을 만들려고 했지만 정부나 기업 등이 도움을 주지 않아 결국 차선책으로 회사 형태로 시작했다고 안철수연구소의 시작을 설명했다.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준 회사 역시 수익이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했다는 얘기다. 그는 "안철수연구소는 관공서나 회사에 납품해 돈을 벌고 개인에게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는 등 공익적인 일을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CEO에서 물러나 유학을 다녀와 대학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현재까지 여전히 그는 '공익'을 맨 앞에 두고 있다. 안 원장은 올해 자신이 보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면서 이를 입증했다. 그의 기부는 정계 진출 신호탄이라는 해석에 앞서 인간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제 안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낳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안 원장은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화제의 중심에 설 전망이다.
◆i가 바꾸고 간 세상
스티브 잡스 前 애플 최고경영자=올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최대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타계한 것이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이 시대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 받은 잡스는 지난 10월 5일(현지시간) 56세로 영원히 잠들었다. 췌장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IT 업계의 신화로 남게 된 것이다.
잡스는 1976년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알토스의 한 창고에서 애플을 창업해 세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인 '애플1'을 공개했다. 애플1은 모니터가 없고 디자인도 투박했으나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이어 1981년 선보인 '애플2'는 PC의 대중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잡스는 1985년 자신이 애플 CEO로 영입한 펩시콜라 사장 존 스컬리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컴퓨터 개발업체 넥스트와 컴퓨터 그래픽 영화사 픽사를 설립해 절치부심하다 보란듯이 성공했다.
1997년 넥스트가 애플로 넘어가면서 애플 CEO 자리에 복귀한 그는 같은 해 적자 10억 달러의 애플을 1년만에 4억 달러의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잡스는 아이맥에 이어 2001년 아이팟, 2007년 아이폰, 2010년 아이패드를 잇따라 내놓아 호평 받았다.
끊임 없는 혁신과 도전으로 디지털 시대 '삶의 방식'을 바꿔놓은데다 PC 시대를 접고 '포스트 PC 시대'를 주도했다는 잡스는 다소 불행한 삶을 살았다. 미혼모의 아들로 갓난아기일 때 입양됐다. 태생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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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간혹 거짓말도 할 줄 아는 보통 사람이었다. 잡스와 워즈니악이 게임 '브레이크아웃'을 만들 때 대가는 절반씩 나눠 갖기로 합의했으나 잡스는 대가로 700달러를 받았다며 워즈니악에게 350달러만 줬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리드 대학에 한 학기만 다니고 그만둔 잡스는 젊었을 때 적어도 한 번 환각작용이 강한 LSD를 복용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생애 가장 중요한 두엇 경험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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