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번 국도에서 역사를 우롱하던 바람은/ 한 찰나도 빼놓지 않고 피묻은 뻐꾹새 울음을/ 귓가에 실어오고 부대끼는 밤 구름을/ 능선 위에 옮겨왔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도/ 이제 나의 개인 화기는 발화하지 않았다./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역사여/ 구름 그림자에 눌리운 이 깜깜한/ 오월의 국도 위에서
도종환 '삼대.8 - 사격명령 중에서'
■ 시인 도종환 읽기(1)=1980년 도종환은 광주에 있었다. 그는 군인이었다. 광주에서 여수 쪽으로 내려오는 무장 시민군 차량을 막기 위헤 17번 국도의 한 고갯마루에 바리케이트를 친 그 무리 속에 그가 있었다. 언덕 양쪽에 호를 파고는 그 안에 들어가 몰려올 시민을 기다린 그 오월의 밤. 그는 자신의 M16 소총을 만지며, 이 물건이 저지를 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소총의 탄창을 꺼내 맨 위의 실탄을 거꾸로 장전해놓는다. 방아쇠를 당겨도 격발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는 가슴을 떨면서 군복 윗주머니의 군용수첩을 꺼내 시를 쓴다. 그때 쓴 시가 저 '사격명령'이다. 그 엄혹의 시절에 참호 속에서 일어난 '마음의 작은 반란'. 그의 시는 그 거꾸로 돌아누운 총알처럼 그를 향해 달려왔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