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세계 경제, '그림자 시장'의 득세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Occupied'. 요즘 미국 언론 보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단어다.
'점령된'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영단어는 월가 점거 시위를 전하는 보도를 타고 미국은 물론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전체 언론 보도에서 월가 시위 관련 기사가 차지한 비중은 7%에 이르렀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차기작인 '시장과 정의(가제ㆍ미래엔 펴냄)'를 집필 중인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학교 교수는 지난 12일 한국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시위에 대해 "월가 시위는 '부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며 "월가를 점거하려는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금융 산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 산업에서 나오는 이익은 개별 은행이나 투자회사가 가져가는 식으로 민영화됐는데, 손실은 사회화된 데 따른 분노가 시위 형태로 번진 것이라는 얘기다.
샌델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시장의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이와 관련해 "우리는 지난 경제 위기로 시장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배웠다"며 "이제 시장의 원래 영역뿐 아니라 교육, 환경 보호, 시민 정신 등과 같은 일상 생활에서 시장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과 고민은 이런 분노를 등에 업은 미국 경제, 그리고 나아가 전 세계 경제가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머문다.
바로 이 때, 전 세계 경제의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이 또 있다. 15년 넘게 국제 경제 관련 칼럼을 써오면서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잘 꼬집어낸다는 평가를 받은 '에릭 와이너'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005년 아시아와 중동의 부자 나라들이 국제 권력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 첫 저서 'What Goes Up'을 펴내며 작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와이너는 신작 '그림자 시장'에서 미래 세계 경제의 모습을 단호하게 그려낸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계 경제가 '그림자 시장'의 움직임으로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게 와이너의 설명이다. 그가 주목하는 미래 경제의 핵심은 이렇게 '그림자 시장'에 있다.
'그림자 시장'은 주식과 채권, 부동산, 통화 등 막대한 보유자산을 기반으로 국제 경제를 지배하는 부자 나라들과 투자자 집단을 뜻한다.
와이너는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가장 유력한 집단은 전 세계 은행들도, 국가의 정부들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아니다"라며 "느슨하게 구성되고,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 수조 달러 규모의 '그림자 시장'이 앞으로 세계 경제를 재편하는 주역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와이너가 우려하는 건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그림자 시장'엔 물론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혁신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지만, 그림자 시장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도 함께 들어있다.
전 세계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주는 그림자 시장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 이는 사실상 그림자 시장에 대한 규제나 감시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샌델 교수가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것과 달리 와이너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그는 "그림자 시장과 관련해 규제나 감시가 없는 건 이 시장의 거래가 외국에서 이뤄지고 각각의 나라가 정한 금융 관계법에 따라 은폐되기 때문"이라며 "그림자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는 알 도리가 없으며,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그림자 시장은 그냥 존재할 뿐이며,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책의 마지막 문장은 와이너의 생각이 어디서 끝나는 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림자 시장'엔 우리가 찾는 '해법'은 없지만, 지금부터 눈여겨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경고'는 있다. 바로 '그림자 시장'이다.
그림자 시장/ 에릭 와이너 지음/ 김정수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만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