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일본 경제가 도마에 올랐다. "7,80년대 호황에 취해 있는 과거형 국가" "야성을 잃은 초식동물…"". 일본 기업인들의 자아 비판은 통렬했다. 자연스레 한국 경제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삼성전자 와 현대차 그룹을 언급할 때는 이건희ㆍ정몽구 회장을 가르켜 '세계적인 경영자'라고 치켜세웠다.
예상대로 재계 성토장이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침범과 기술 탈취, 납품단가 후려치기, 친인척 비상장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대기업 임원들의 높은 연봉…. 죄목(?)이 하나 둘 열거됐다. '탐욕' '야수' '악질' 등 원색적인 비판도 이어졌다. 이 순간 공청회는 더 이상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호통치고 흠집내는 청문회였다. 재계는 죄인이었다.
일본 기업인들의 '찬사'와 우리 국회 의원들의 '질타'. 1주일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극과극의 촌극은 대한민국 기업의 슬픈 자화상이다. 밖에서는 마냥 부러워하지만 안에서는 날을 세우는 모순된 현실.
얼핏 보면 '소니 데자뷔'다. 과거 80년대 일본 소니 제품에 열광했던 것처럼 이제는 애플 아이폰에 환호하면서 '왜, 이런 제품을 한국에서는 못 만드냐'고 각을 세운다.
추락한 재계의 위상은 사실 기업인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노조 억압…. 결국 기업인들의 '도덕적 재무장'이 재계 위상 세우기의 선결 조건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사재 5000억원을 기부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정치권과 소비자들도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공(功)은 공대로 과(過)는 과대로 평가해달라"는 재계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재계의 슬픈 자화상은 피아(彼我) 를 떠나 우리 사회 전체의 손실이기 때문이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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