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믿었는데..덫에 걸린 IB<투자은행>

[아시아경제 송화정 기자, 이민아 기자]# A증권사는 지난 2009년 한국전력이 보유 중이던 한전KPS 지분 10%에 대한 매각 주관사로 선정됐다. 처분 못한 물량이 생긴다면 A증권사가 인수한다는 조건이 이 계약에 붙었다. 지난해 10월 A증권사는 맡은 주식을 팔기 위해 대량매매(블록딜)에 나섰지만 전량매각에는 실패했다. A증권사는 결국 남은 지분 5%를 떠안았다. A증권사는 여기에 1500억원을 투입했는데 인수 이후 연일 주가가 떨어졌다. 설상가상이었다. 지난달 말까지 누적 평가손실이 806억원에 달했다. 결국 지난 21일 A증권사는 떠안은 지분 가운데 1.53%를 시장에 팔았다. 지난해 말 인수했던 가격보다 45% 낮은 가격의 손절매였다. 남은 지분 3.47%도 상황을 봐가며 처분할 계획이지만,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B증권사는 대규모 손실에 더해 송사에까지 휘말리게 된 케이스다. 회계부정으로 지난 3월 갑자기 거래가 정지된 중국고섬 때문이다. 중국고섬의 한국인 소액주주들은 상장 대상 기업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관사인 B증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소송과는 별개로 B증권사는 이미 중국고섬 주식 때문에 235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은 상태다. 실권주 중 830만주를 공모가 7000원에 인수했는데 주가가 40.5%나 떨어진 상황에서 거래까지 정지됐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이 침체된 주식위탁매매(브로커리지) 사업의 대안으로 투자은행(IB) 부문을 강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지만 결과는 이렇게 우울하다. 제 살 깎아먹기 식의 수수료 인하 경쟁은 IB시장의 기본이다.


한전KPS 매각 주관사가 됐다가 낭패를 본 A증권사의 경우도 계약을 따내기 위해 2~3% 수준의 통상가격보다 낮은 1.99%의 수수료율을 제시했었다. 지난 2009년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상장 당시 주관사로 선정된 C증권사의 경우는 0.01%라는 파격적인 수수료를 제시해 덤핑 논란을 일으켰다.

그나마 높은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던 해외 기업의 상장도 현재는 거의 막힌 상태다. 중국고섬 사태로 차이나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해외기업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중국고섬 사태 이후 첫 해외기업 상장에 나섰던 완리인터내셔널은 실권주가 발생한 데다 상장 이후 주가도 바닥을 기었다. 완리의 주관사였던 D증권사는 실권주 88만주를 공모가 4100원에 인수했는데, 완리는 지금 32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완리의 뒤를 이어 상장이 예정돼 있었던 중국기업 컴바인윌은 이런 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결국 상장을 포기했다. 컴바인윌 상장에 공을 들였던 E증권사는 지난 수년간의 노력과 비용이 수포로 돌아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기업의 경우 국내기업의 상장보다 준비기간이 길고 투입인력이 많아 그만큼 수수료가 높지만 시장여건이 안 되니 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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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IB들과는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자문, 해외채권 발행 등에서 국내 증권사는 IPO업무에서만 2개사가 5위권에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나머지 IB시장 대부분은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등 해외 투자은행들이 차지했다.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은 “투자은행은 자본시장의 핵심 중개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사들은 취약한 자본력으로 단순 중개 위주의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저가출혈 경쟁이 횡행하고, 대외 경쟁력은 저하되고, 기업금융 기능이 위축되는 등의 문제점이 야기됐다는 지적이다. 신 실장은 “시장을 선도할 대형 투자은행의 출현을 촉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화정 기자 yeekin77@
이민아 기자 m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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