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환익 코트라(KOTRA) 사장(사진)이 퇴임을 앞에 두고 직원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조 사장이 임기 중에 직원들과 꼭 해보고 싶었지만 사장이라서 차마 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한 리스트가 적혀 있다. 그는 이것들을 조 사장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들)라 이름 붙였다. 그의 버킷 리스트를 정리 요약했다.
어느날 출근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보면 직원들이 청바지에 캐주얼 셔츠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아 오늘이 금요일이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TGIF!(Thanks God It's Friday) 오늘만 지나면 즐거운 주말이네요. 늑대같은 팀장도 여우같은 차장도 이틀은 안봐도 되겠죠. 하지만 저는 금요일에도 공식일정이 있으니 캐주얼 복장은 입기 어렵습니다. 일정이 없다 하더라도 입고 올 청바지 같은 옷이 마땅치 않네요. 콤비에 남방셔츠 정도나 입고 나와서 직원들로부터 '캐주얼 입으시니까 더 편안해 보이세요'라는 소리 좀 들어보았더라면 어땠을까요.
2. 사진 동아리 따라서 야외에서 풀꽃 사진 한 번 찍어 보았더라면
특히 사진 동아리는 참 재미있을 것 같더라구요. 지는 해도 찍어보고, 눈 덮인 산골 마을도 찍어보고, 먼 바다에 가물가물한 배도 찍어보고, 피맛골 뒷골목의 사람 사는 냄새도 찍어보고.. 참 담고 싶은 것이 많지요. 그렇지만 제일 찍고 싶은 것은 산길 올라가다 우연히 마주친 이름 모를 풀꽃이 수줍고도 화사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나중에라도 한번쯤은 해봤으면 합니다.
3. 옥상 흡연방에서 유비통신(유언비어)을 들어봤더라면
저는 저녁 때는 식사나 음주 중 담배를 좀 핍니다만 근무 중이나 실내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트라 내에서는 금연을 끝까지 유지하고 있는데 옥상에 흡연실이 있다는군요. 어떻게 생겼나 한 번 가보기는 했지만 안에서 같이 피워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옥상에서 담배피우는 분들이 코트라의 여론주도층이라면서요? 인사의 상당 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간부들에 대한 평가, 각종 사내 가십이 이곳에서 재생산되고 또 이곳에서 나온 이야기는 거의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쪽까지 전달이 된다는군요. 나도 한번쯤 올라가서 같이 한 대 뿜어주고 그들의 이야기 좀 들어보았으면 한 적이 많습니다. 투명 인간이 될 수 있었으면 분명 한 두번쯤 그랬을 것 같습니다.
4. 새내기들과 밥먹고 2차 노래방 가서 한 번 같이 놀아봤더라면
저는 저녁 식사 후 2차를 원칙적으로 안간 지가 꽤 오래 됐습니다. 늘 저녁 약속이 있고 애주가인 제가 그 정도는 절제를 하지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2차를 갈 경우 대부분 간단히 딱 한 잔을 맹세하고 가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래 딱 한잔만 하고 2차가 끝났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돈도 많이 들고 체력 소모도 많고 해서 저는 어쩌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거의 95% 이상 1차로 저녁 식사를 끝내고 바로 귀가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코트라 가족과 놀아본 기억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특히 1년차, 2년차 새내기들이 그렇게 재밌다고 들었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간부들과 노는 것보다는 한번쯤 내 아들 뻘보다 훨씬 젊은 우리 새내기들 노는 것을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았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5. 점심 때 1층 로비에서 같이 식사하러 가자고 약속한 사람 기다리는 것
직장인에게 점심 1시간은 하루 중 짧지만 가장 유쾌한 일탈의 시간이 아닙니까? 오늘은 누구와 점심을 같이할까? 오랜만에 동기들과, 옆의 팀과, 동아리 멤버와 등등.. 머리 아프겠지만 즐거운 고민이지요. 그리고 일층에서 만나기로 하고 '이사람 자기 팀장에게 잡혔나? 왜 이렇게 늦어..' 하면서 기다리는 즐거움. 그리고 성원이 되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횡단보도를 건너 '먹자 동네'로 넘어가는 모습. 나는 지나가면서 또는 차안에서 이런 광경을 부럽게 바라만 보고 있었지요. 거의 하루도 사전에 정해지지 않은 오찬이 없었고 늘 비슷한 패턴의 음식, 긴장을 풀 수 없는 대화, 외국인들과 오찬 시에는 피로도가 두 배는 더해지는 것 같구요. 코트라 있는 동안 나도 한 번 아래층에서 누구 기다렸다 같이 옆 동네 걸어가서 동태찌개 같은 것 한 번 먹어보았더라면.
이창환 기자 gol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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