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포럼]칠레 광부들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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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5일 시작된 69일간의 리얼리티쇼를 기억하는가. 2000명이 넘는 전 세계 언론인들이 현장에서 실시간 보도를 하고 세계 각국에서 보낸 물품과 격려편지가 산더미를 이뤘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유명인사들이 줄을 서서 방문하고 9ㆍ11 테러 때 등장했던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와 같은 구호가 다시 나타났다. '우리는 모두 칠레인이다.'


칠레의 광산 붕괴 이후 10주 동안 전 세계는 그들과 희비를 같이했다. 한 명이라도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절망에서 시작된 이 리얼리티쇼는 결국 전원 구출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광부들은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구출작전을 진두지휘한 신임 대통령은 지지율이 10%나 올랐다. 전 세계인은 인간의 의지와 희망이 주는 힘을 보았다.

그로부터 반년여가 지난 지금 칠레 광부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의 결말은 모두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므로 그들도 그럴까. 최근 당시의 리얼리티쇼를 하루하루 기록한 책이 국내에 발간되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매스컴을 통해 보던 '밝은 해피엔딩' 이면의 '어두운 현실'이 있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첫 14일간은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첫 번째 구조작업이 실패했을 때 광부들은 붕괴 당시보다 더 큰 절망에 빠진다. 헛된 희망이 위기극복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그대로 나타난 것. 그리고 17일째 드디어 생존 소식이 지상에 알려지고 드라마틱한 구조작업은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들이 초심을 잃어간 것은.

시작은 지상에서였다. 독점 인터뷰와 자서전 판권을 노린 언론사와 출판사들이 몰려들었다. 광부들이 아직 땅속에 갇혀 있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제작되고 있었다. 정치인들은 자기 피아르(PR)에 혈안이 되고, 정부는 언론검열을 시작한다.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에서 몰려든 '광부 가족들'과 이로 인한 불륜 사실의 들통, 가족 사이에 벌어진 보상금 문제까지.


지하세계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참치캔 한 통을 나눠먹으며 서로를 격려하던 광부들은 이제 각자 구출된 후의 계획을 짜는 데 골몰한다. 지급된 TV를 보느라 동료 간의 대화도 줄어들었다. 누가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느냐를 두고 갈등도 일어난다.


이 모든 '어두운 현실'을 우리는 전혀 몰랐다. 마지막 구출 순서를 정할 때까지 그들이 보여준 질서정연함과 동료 간의 우애에 감동하기만 했다. 그래서 '현실'을 안 후 약간의 씁쓸함이 스친다. 구출될 것이라는 확신, 주목 받는 상황이 그들의 영웅적 행동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든다. '인간사가 다 그렇지' 자조도 생긴다. 지금도 언론은 광부 중 한 명이 마라톤 대회에 참석했다거나 25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해피엔딩' 소식만을 간간이 보도한다. 우리 모두가 '어두운 현실'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영웅 만들기에 골몰한다. 그리고 영웅은 모든 면에 완벽하기를 바란다. 광부들의 인원 수 33은 칠레에서 이제 행운의 의미로 자리매김했다. 칠레뿐인가. 인간의 척추뼈 33개, 예수의 33년 인생, 우리나라 민족대표 33인 등. 전 세계에서 33을 이리저리 맞춰 의미를 부여한다. 칠레 광부들이 영웅으로서 영원히 우리 기억에 남길 바라면서 말이다.


칠레 광부들은 지금,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한 채 잘 지내고 있을까.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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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나 IGM(세계경영연구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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