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 기자의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 마이크 리의 '세상의 모든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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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둘 다 ‘영국의 대표 사회파 감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켄 로치와 마이크 리의 영화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그에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예에서 보듯 켄 로치는 내놓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프라파간다 영화에 집중한다. 마이크 리는 다르다. 성인이 된 흑인 딸과 만나는 백인 어머니를 그린 ‘비밀과 거짓말’이나 2차 대전 중 불법 낙태를 시행하다 사형된 여자의 이야기 ‘베라 드레이크’ 등 마이크 리는 개인이나 가족의 특정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영국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을 관객으로 하여금 깨닫고 이를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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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리의 열한 번째 장편 ‘세상의 모든 계절 Another Year’은 많이 밝아지기는 했지만 감독의 이런 영화적 색깔이 분명한 작품이다. 영화는 이제는 60대에 접어든 톰과 제리 부부(고양이와 쥐처럼 앙숙은 아니다)의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이야기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계절’의 이야기의 주도권을 쥔 사람들은 불행하기 짝없는 메리와 켄이다. 경제력도 의지할 친구도 하나 없는 메리와 켄은 시도 때도 없이 톰과 제리를 찾아와 ‘진상 짓’을 떨고, 톰과 제리의 평온한 일상은 자꾸 깨진다. 하지만 메리와 켄은 행복한 톰과 제리의 일상을 보며 잠시나마 불행한 자신의 현실을 잊는다. ‘세상의 모든 계절’은 외로움과 상처, 오해와 비밀, 사랑과 위로 등 인생의 다채로운 감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절처럼 변하는 관계와 ‘왜 세상 모든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을까?’ 라는 행복의 재분배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도 던진다.


드라마틱한 이야기 전개나 매력적인 인기 스타들이 떼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익숙한 관객들이라면 ‘세상의 모든 계절’은 도무지 극장에서 참고 견디기 힘든 밋밋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무리는 아니다. 아직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경험하지 못한 열정적인 젊은 관객들이 삶보다 죽음 쪽에 더 가까이 있는 노년의 일상과 행복 이야기가 쉽게 다가올 리 만무하다. 이렇게 정리하자. 만약 당신이 메리의 사계절 동안의 모습에서 살짝 자신의 삶을 오버랩 시킨다면, 당신은 ‘세상의 모든 계절’을 제대로 느낀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당신은 걱정이 전혀 없는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하며 살거나 혹은 전혀 이 영화에 흥미가 없었거나 둘 중 하나다. ‘전부 아니면 전무 All or Nothing’, 마이크 리의 2002년 작 영화 제목처럼.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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