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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우리들의 '쫄리'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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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격하면 때로 말문이 막힌다고 하던가. 지난 4일 밤 나와 아내가 그랬다. 아내는 입을 꼬옥 다문 채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훔쳤다. 나 역시 말을 잊고 연방 눈시울을 붉혔다. '울지마, 톤즈'를 보는 내내 코허리가 시렸다. 가슴이 먹먹해 한동안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울지마, 톤즈'는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마흔 여덟이라는 길지 않은 생. 그의 삶의 무엇이 이토록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비우고 나누는 참된 사랑이 무엇인가를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한 때문일 것이다. 그의 강론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우리가 밟고 선 땅 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실천하고 행동하는 데서 나온다. 그 말고도 지금 우리 주위에서, 또는 먼 다른 나라에서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은 많다. 그들의 삶이 우리 가슴을 적시는 것은 작지만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어 가꾸면 기적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삯바느질하는 홀어머니의 4남6녀 중 아홉째로 가난을 몸에 달고 살았던 그는 의사로서의 평탄한 길을 마다하고 사제의 길을 택했다. 사제 서품을 받고는 자청해서 긴 내전과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수단 남부의 작은 마을 톤즈로 갔다. "가 본 곳 중에서 제일 가난한 곳인데, 가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라도 가야 한다"면서. 약하고 가난한 자와 함께하겠다는 비움과 나눔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는 2001년 12월부터 2008년 말 대장암 선고를 받기 전까지 7년여 동안 톤즈 마을에서 직접 벽돌을 만들어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의사로서 한센병과 말라리아 환자를 치료했고,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공부와 노래를 가르쳤다. 절망의 땅에 사랑과 희망의 씨앗을 심고 가꾸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를 존경과 사랑을 담아 세례명 '요한(John)'의 영어식 발음과 성(Lee)을 합쳐 '쫄리'라고 불렀다.
'쫄리' 신부의 삶이 한층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은 사제로서 하느님만을 위해 산 게 아니라 땅 위의 사람들을 위해 살았다는 점이다. 톤즈에 온 그는 성당이 아닌 학교를 먼저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이라면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며. 말기 암 선고를 받고서도 "우물을 파러 가야 하는데…"라고 하고, 2010년 1월 죽기 직전까지도 "하루빨리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며 자신보다 톤즈 마을을, 톤즈의 아이들을 더 애틋해 했다.

'울지마, 톤즈'는 12.8%로 설 연휴 기간 방송된 영화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는 5일로 관객 40만명을 넘어섰다. 그의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요즘 베스트셀러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쫄리'신부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동한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그가 생을 마감하면서 진정으로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높은 시청률이나 영화의 흥행, 베스트셀러, 수단의 슈바이처라는 명예를 원했을까? 그보다는 자신이 뿌린 사랑의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보다 많아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누구나 '쫄리' 신부처럼 될 수는 없다.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감동을 그저 가슴 속에만 담아둔다면 '쫄리' 신부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감동을 끄집어내 행동으로 옮기는 게 필요하다. 마이클 센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미덕도 연습을 통해 습관화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미덕일지라도.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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