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겨울방학 수험생의 선택은? 기숙학교 vs 기숙학원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 김도형 기자]흑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필라델피아의 도심에 첨단 기술을 동원해 기숙학교를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세워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자신과 부인이 운영하는 게이츠 재단을 통해 '기숙형 고등학교' 사업에 이미 2조원 이상을 쏟아 부었습니다. 시카고에 100여개, 뉴욕에 200여개의 새 학교를 지어주는가 하면 오클랜드, 밀워키, 클리블랜드, 보스턴 등 주로 대도시에 500여개의 소규모 기숙학교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게이츠는 고등학교의 규모가 작아야 엄격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으며 학생이 교사들의 관심과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학교는 학생의 학습 동기를 높여주고 출석률을 끌어올리며 안전감을 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많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과거 대도시의 슬럼화된 학교에서는 50%이상이 중도탈락률을 보였으나, 이 소규모 기숙학교에서는 중도탈락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이 학교들은 현재 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선망하는 학교가 되어 높은 입학경쟁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게이츠가 교육지원의 초점을 고등학교에 두는 이유는 이 시기가 성공과 실패로 가는 인생의 갈림길이 되는 중요한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자녀교육에 걱정이 많은 부모님들을 위해 교육담당 기자들이 기숙학교와 기숙학원을 직접 둘러보고 왔습니다.
◆경기도 광주 중앙고 "친구들과 새벽공부 효과만점"
"하루 일과가 다 끝난 새벽 1시에 자려고 하면 주변 침대가 텅텅 비어 있어요. 자려고 누웠다가 다시 나가서 공부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죠"
올해 고려대에 합격한 경기도 광주 중앙고 박준선(19)학생은 고3 기숙사 생활의 치열함을 이렇게 전했다. 결국 침대에서 나와 복도창가를 따라 쭉 이어진 책상 앞에 나가 앉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시간은 오후 9시 30분에 시작해 12시가 되면 끝나지만 고3은 기숙사에 와서도 바로 침대로 향하지 않고 '추가공부'까지 한다. 친구들과 함께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생활도 이제 준선에게 추억이 되었다.
지난 14일 찾은 중앙고등학교(교장 김현수) 기숙사에서는 겨울방학에도 150여명의 학생들이 머물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올해 고3이 된 윤아란(18)학생도 스스로 세운 빼곡한 겨울방학 계획표에 따라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취약과목은 겨울방학 특강으로 보충
기숙학교에서 생활하는 아란이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데도 시간이 모자라는 것 같다며 자신의 하루 일과표를 공개했다.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마치면 수업이 시작하는 9시보다 20분 가량 일찍 학교에 도착한다. 기숙사 바로 앞에 위치한 학교 건물로 이동해 20분 정도 어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한다.
9시부터 10시 30분까지 이어지는 1교시 수업에는 특강을 듣는다. 특강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과 선생님을 선택해 직접 수강신청을 한다. 수학을 약한 과목으로 뽑는 아란이는 1교시 수업으로 수학 '미적분과 통계 기본'수업을 선택했다.
10시 50분부터 12시 20분까지는 수능 대비 문제풀이식 언어 수업을 듣는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다음 본격적인 오후 특강수업이 시작된다. 1시 30분부터 5시 20분까지 사회탐구 수업을 듣는다. 정치와 근ㆍ현대사, 국사 3과목을 선택해 방학동안 확실하게 정리할 작정이다.
▲자신만의 학습 계획표대로 자율학습 활용
저녁식사가 끝나면 오후 6시 30분부터 기숙사 3층에 위치한 학습실로 옮겨 본격적인 야간 자율학습에 돌입한다. 아란이는 6시간에 달하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자신에게 꼭 맞는 계획표를 스스로 만들었다.
야간 자율학습은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2시간가량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지고 중간에 1시간가량 쉬는 시간을 가진 다음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진행된다. 아란이는 2시간 반 가량씩 되는 자율학습 시간을 자신의 계획에 맞게 세분화해 공부한다.
겨울방학 동안 취약 과목을 집중 공략하기로 한 아란이는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수리영역 공부에 할애한다. 7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이미 개념정리를 마친 '수Ⅰ'과목을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고,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는 '미적분과 통계기본'을 복습하는 데 EBS 인터넷 강의를 활용한다. 학습실 옆에는 E-러닝센터가 있어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자 하는 학생들은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돼 있다.
오후 9시 30분부터 아란이는 1시간 동안 EBS 수능 열기와 수능 길잡이 등을 보며 언어영역 공부를 한다. 오후 10시 30분부터는 EBS교재로 외국어를 공부한다. 하루 10개의 지문을 풀고, 꼼꼼하게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12시까지 남은 자투리 시간 30분은 어떻게 활용할까? 아란이는 다시 수학을 택했다. '수Ⅰ'과목 중에서도 유달리 어려운 행렬 파트의 확답형 문제를 풀며 실력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보기지문 중 여러 개의 답을 골라야 하는 확답형 문제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아란이를 위해 수학선생님이 직접 챙겨주신 문제들이다.
12시 종이 울리면 다시 생활관으로 올라가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아란이는 이 시간을 조금이라도 활용하기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새벽 1시까지 책을 읽는다. 언어영역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대학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데도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는 아란이는 추운 복도에서 담요를 두르고 읽어야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늦은 밤 불 밝히고 있는 책이 재미있다고 말했다.
아란이가 학교 기숙사에 머물면서 내는 비용은 한 달에 10만8000원. 하루 세 끼의 식사비용은 22만원으로 총 한 달에 32만8000원의 비용을 부담하면 된다. 정성진 교감은 "기숙사를 위탁하지 않고 직접 운영해 학생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남양주 스카이에듀 학원 "맘껏 할 수 있는건 공부 뿐이죠"
하루는 24시간, 1440분이다. 지난 19일부터 이틀 동안 직접 찾아가 밤낮을 보내며 살펴본 기숙학원은 이 가운데 정확히 11시간 50분, 710분을 오롯이 책상 앞에 앉아 있게 하는 그런 곳이었다. 또 자습시간에 학생이 멍하게 책만 쳐다보고 있는 건 아닌지까지 살핀다고 할 정도로 밀착관리하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6시30분 기상해서 하루 11시간 50분 공부
스카이에듀 기숙학원(남양주 스카이에듀 학원)의 기상은 아침 6시 30분이다. 해가 짧아 밖은 아직 캄캄하다. 지난 밤에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감독하던 생활담임 선생님들이 일일이 방을 돌며 아이들을 깨운다. 팔다리를 주무르기도 하고 2층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걷어버리기도 한다. 전쟁 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생활관은 7시 20분이면 폐쇄된다.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무조건 학습동으로 건너가야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생활관 2,3,4층의 숙소에서 간단히 씻고 1층 식당으로 내려와 밥을 먹고는 바로 학습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활관은 숙식만을 위한 공간이다. 책을 넣어둘 사물함마저도 학습동 교실에 준비돼 있다.
일과는 빡빡하다. 7시30분부터 20분간 영어 듣기 방송을 듣고 점심 때까지 4시간의 수업이 이어진다. 각 반별로 언어ㆍ수리ㆍ외국어 수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현재 이 기숙학원에는 재수 선행반 2반(60명), 예비고3 겨울방학반 5반(124명)이 공부하고 있다.
12시부터 1시간의 점심시간 후에는 역시 수업이 이어진다. 6시까지 5시간이다. 중간 중간 10분씩의 쉬는 시간이 있지만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여유'는 매점 방문 정도가 전부다. 핸드폰, MP3 등의 전자기기는 소지할 수 없다. 군대를 다녀온 성인학생이어도 흡연은 금지다. 학원 내에 유일한 TV는 식당에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영상은 나오지 않는 음악 채널을 틀어놓을 뿐이다.
이 학원 전철상 부원장은 "학생들이 마음껏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다"고 말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괄적으로 운영되는 이 학원의 시간표를 살펴본 결과 정확히 쉬는 시간과 취침,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정확히 11시간 50분 동안 학생들은 책상 앞에 앉아 있게 된다. 취침시간은 11시30분에 학습 일과가 마무리되면 30분 가량 잘 준비를 하고 12시 무렵 잠자리에 들게 된다.
▲ 꼼꼼한 밀착관리.. '데일리 리포트'로 소통
저녁을 먹고 오후 7시부터는 1시간20분씩 3번의 야간 자습 시간이 이어진다. 오전ㆍ오후의 수업에는 학과담임 선생님 중심으로 학생들을 관리했다면 이 시간에는 생활담임 선생님들이 활약한다. 7명의 생활담임 선생님들은 각자 한 반씩을 맡아 자습시간과 생활 전반을 관리한다.
이한필 선생님은 "아침 이른 시간과 마지막 야간 자습 시간에는 학생들이 많이 피곤해 하는 것을 알지만 졸거나 공부를 소홀히 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면서 "자습시간엔 15분 정도 간격으로 교실을 돌면서 집중하지 않고 멍하게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건 아닌지까지 살핀다"고 말했다.
이 학원엔 현재 10명의 학과 담임선생님과 15명 가량의 강의 담당 선생님, 그리고 14명의 생활담임 선생님이 배치돼 있다. 이 자습시간에 교무실에는 4명의 질문당직 선생님들이 배치된다. 질문이 있는 학생들은 목에 명찰을 걸고 교무실을 찾는다. 외국어 영역의 이동엽 선생님은 "시내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는데 기숙학원의 학생들이 확연히 학습의욕이 높다"면서 "자습시간에는 보통 쉴틈없이 질문이 이어지고 오늘도 20명 넘는 학생들이 교재를 들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런 밀착지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는 이 학원만의 '데일리 리포트'다. 매일 일과를 마치고 학생이 작성하고 이 책은 일종의 학습 일기장이다. 재수 선생반의 배효진 학생은 이날 영어 시간에는 분사 구문 판별법을, 수학 시간에는 삼차함수의 극대극소와 그래프 개형 판별을 공부했다고 꼼꼼하게 정리했다. 매일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 학원 측의 설명이다.
'계획과 반성'란에는 '오후에는 점심 먹고 다소 졸리기도 했는데 전철상 쌤 얘기에 잠이 확 깨었다. 우리 모두 목표에 대해서 좀 더 절박함을 가지고 임하자고 하셨다. 조금은 힘들지만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들과 내 꿈에 대해서 잊지 않겠어!'라고 썼다. 이한필 선생님은 "1월말에서 2월 중순까지는 감기 조심해야 할 기간예요.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은 그만큼 슬럼프가 따라오기 마련이야 효진아. 언제고 지쳐 집중이 안 되고 힘들어지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는 멘트를 달았다.
이 선생님은 "데일리 리포트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을 점검하고 말로 하지 못하는 얘기들도 서로 주고 받는다"고 설명했다. 리포트 앞에는 학생이 학원에 들어올 때 상담한 결과가 적혀있다. 유난히 언어 영역이 약한 배효진 학생은 두 페이지 가운데 한 페이지 이상이 언어 영역 학습 전략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거친 학생들의 성과는 어떨까. 전철상 부원장은 "재수종합반의 경우 90% 이상의 학생들이 수능 성적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는데 크게 25%의 학생들은 성적이 매우 향상되고 50% 가량의 학생들은 상당히 향상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나머지 25%의 학생들은 성적이 거의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 학원은 250명 가량의 재수종합반 학생들을 수능 날까지 학원에서 내보내지 않았다. 며칠 사이에도 리듬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판단해 주소를 모두 옮겨와 인근 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다. 전 부원장은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해 직접 상담한 학생 가운데 17명을 돌려보냈다"면서 "우리는 학생들이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지만 힘든 생활인만큼 본인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kuer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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