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 대부' 이돈명 변호사, 정의 남기고 떠나다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1970년~1980년대 시국사건 피고인들 변론을 도맡으며 '인권운동의 대부'로 이름을 알린 대표적 '인권 변호사' 이돈명(사진) 변호사가 값진 업적을 뒤로하고 11일 오후 7시20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세.
192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52년 고등고시 사법과(3회)에 합격해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1963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고인이 인권 변호사로서 귀한 발자취를 남기기 시작한 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변론을 맡으면서부터다.
돈과 출세를 과감히 포기하고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진 그는 이후 인혁당 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 사건, YH 사건,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청계피복 노조 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광주 민주화운동 등 우리나라 현대사에 깊이 새겨질 대형 시국사건 단골 변호사로 활약했다.
그가 1986년 한승헌·홍성우·조영래 변호사와 뜻을 모아 만든 '정의실현 법조인회'는 지금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남아 후배 변호사들의 '정의 구현' 의지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이부영 전 의원이 민통련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노동운동 사건으로 수배중일 때 그를 숨겨줬다는 혐의로 수감되면서도 "나는 불의에 쫓기는 한 마리 양을 보호했을 뿐 범인을 은닉했다는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 고인은 자신의 말처럼 불의에 맞서고 정의를 바로세우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정치적 입장이나 특정 사건에 관한 인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법정에서 상대를 공격한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그는 배려와 포용을 온 몸으로 실천한 귀한 어른이었다는 게 후배 변호사들의 전언이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자동차를 가져본 적도 없을 만큼 청빈했던 생활도 귀감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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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민변 고문, 조선대 총장, 한겨레신문 상임이사, 상지학원 이사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최근까지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로도 일했다.
고인의 유족은 아들 영일·동헌·사헌씨와 딸 영심·영희씨 등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4호이며 발인은 15일 오전 8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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