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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임대주택을 가다]이주노동자까지 껴안는 따뜻한 '주거복지'(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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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비영리단체 주도...소셜믹스, 양극화는 숙제로 남아

[해외임대주택을 가다]이주노동자까지 껴안는 따뜻한 '주거복지'(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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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현재 생활에 만족한다. 낮에는 택시를 운전하고, 저녁에는 이따금씩 대학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모임에 나가고 있다. 22년전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처음으로 이사와 현재는 어머니, 형, 형수, 아내 등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사미드(39세)씨는 영국의 명물택시 '블랙캡' 운전사다. 임대주택이 밀집해있는 런던 이스트엔드(East End)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 탄 택시에서 마침 운좋게 '실거주자'인 사미드씨를 만났다. 타워햄릿구에 위치한 그의 집의 임대료는 주당 137파운드(약 24만8000원)다. 주변시세보다 25% 가량 저렴한 수준이다.
방2개짜리 이 임대주택에 입주하기까지 기다린 시간만 4년이지만 요즘은 이마저도 수요가 넘쳐 대기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국에서는 사미드씨와 같은 임대주택 입주민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이스트엔더스(Eastenders)'도 임대주택에 사는 주인공들을 배경으로 할 정도다.

2008년 말 기준으로 영국의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은 총 387만5000가구다. 전체 주택 2219만가구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17.5%로 우리나라의 9.1%에 비해 2배 가량 높다. 1000인당 임대주택 재고수 역시 영국이 63.1가구, 우리나라가 13.9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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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대주택 공급에 지자체, 비영리단체가 주도적으로 참여

영국 임대주택은 각 지방정부와 비영리주택공급기관인 '민간 주택협회(Housing Association)' 등이 건설주체가 돼 공급에 앞장서고 있다. 지방정부는 1920년부터 임대주택 건설에 나섰으며, 정부는 필요한 자금을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런던 주택의 3분의 1 가량이 파괴됐는데 이후 재건사업에 지방정부가 적극 나서서 대규모 주택공급을 추진했다.

이러는 동안 민간에서도 일부에 불과했던 주택협회들이 1960년부터 본격적으로 생겨나 자체적으로 지역민들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조직한 만큼 주택조합의 규모나 성격도 지역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지역 주택조합이 '게이트웨이(Gateway)'나 '사우던 하우징 그룹(Southern Housing Group)' 등이다. 런던에서만 사우던 하우징 그룹은 4000가구, 게이트웨이는 약 2000가구를 보유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공급에서부터 운영, 관리, 입주민 서비스까지 직접 맡아서 한다.

이 같은 민간 주택조합에 대한 투자 및 규제·관리를 담당하는 역할은 'TSA(Tenant Services Authority)'가 하고 있다. 이전 주택공사(Housing Corporation)가 조직개편된 것으로 주로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재원 배분, 임차인 지원서비스 업무를 담당한다.

이안 심슨 아콘 사회연구 센터장(Acorn Social Research)은 "4년마다 정부가 종합정부지출계획서를 발표하면 거기에 맞춰 TSA에서 각 주택조합의 규모나 상황에 맞게 지원 프로그램을 짜고 입찰에 필요한 기준을 마련한다"며 "현재 전국에 5000여개 이상의 주택조합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입주자 선정 기준 등은 각 지자체나 조합의 고유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면, TSA의 지원과 규제하에 지방정부와 민간 주택조합 등 공공과 민간에서 각 실정에 맞게 임대주택 보급에 나서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의 참여가 저조한 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도맡아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한국의 시스템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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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정부의 심각한 부채난..주택정책은?

그러나 비교적 공공임대주택의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영국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정적자 규모만 국내총생산의 11%에 달하는 등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2015년까지 810억파운드의 재정적자를 줄인다는 고강도 긴축안을 내놓았다. 복지부문에서의 예산삭감이 이뤄지는 만큼 임대주택 정책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사라 몽크 캠브리지 대학 주택연구센터 부소장은 "향후 5년간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 정책은 정부의 예산삭감 등 긴축재정안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며 "주택수당 지급 규정도 보다 엄격해질 것"이라 설명했다. 현재 영국은 소득이 낮아 임대료를 지불할 수 없는 임차인들에게 주택 수당 등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당장 TSA도 내년부터는 통폐합의 대상이 된다.

모 알리 게이트웨이 관계자는 "우리 기관에서는 임대료를 지역별 시세와 개인별 소득을 고려해 시세의 3분의 1정도를 받고 있다"며 "그러나 연립정부 들어서면서는 임대료를 50%까지 받기를 정부가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임차인들 입장에서는 주택수당에 대한 혜택은 줄어들면서 임대료는 올라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앞서 1980년대 대처 정부 당시에도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대적인 임대주택 민영화 정책을 실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당시 630만 가구였던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현재까지 243만가구가 민영화됐다. 이 중에는 임대주택에 살던 사람들이 시세보다 싼 가격에 주택을 매입하도록 하는 'Right to buy' 정책으로 민영화된 물량만 175만가구에 달한다.

현재 게이트웨이에서 운영하고 있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폴린 테닝(68세)씨는 "임대주택이 안전하고 시설도 나쁘지 않다. 다만 연립정부 들어서면서 임대주택 관리인들을 고용하도록 지원하는 지원금이 대폭 삭감되면서 관리인들이 대폭 줄었다. 생활의 불편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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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셜 믹스', '양극화'는 영원한 숙제

신자유주의의 발원지인 영국에서 양극화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특히 영국은 유럽 중에서도 자가주택 소유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며, 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도 활발한 편이다. 한때 템즈강을 중심으로 동북부인 이스트엔드는 빈민가, 서쪽 웨스트엔드(Westend)는 고급주택가로 분리됐던 모습은 한강을 중심으로 강북·강남으로 나뉜 우리나라와도 비슷한 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나라는 아파트, 주상복합 등 고층건물에 사는 것을 중상층 이상으로 생각하지만 영국은 반대다. 우리나라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영국의 '플랫(flat)'은 주로 정부가 지은 임대주택을 가리킨다. 오히려 고층건물에 살면 '못산다'는 낙인효과가 부각되는 것이다.

6년째 노인전용 임대주택 '셸터(shelter)'에 사는 알란 풀랭(68세)씨는 "집은 단순히 벽돌과 시멘트로 지어진 곳이 아니라 사람이 애정을 깃들이는 곳인데, 가끔 세입자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라며 "임대주택에 사는 것을 2등 시민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영국은 공공일자리 축소, 학비 지원 삭감 등 정부의 정책에 반발하는 크고작은 시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1979년 영국 대처 정부의 개혁에 반대해 잇따라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불만의 겨울'이 30여년 만에 다시 재현될 우려도 커진 상태다.

런던을 방문했을 당시에도 바로 며칠 전 등록금 인상에 반대한 학생들의 시위가 있은 후였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의 임대주택 정책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지 지켜볼 일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정부가 임대주택 민영화 정책을 펼친 이후로 현재까지 임대주택 대기자 명단은 20만명에 달하고, 매년 대기기간도 지난해 대비 10%씩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지난 3분기 런던의 홈리스 수는 2630명으로 전분기에 비해 14.3% 늘었다.



영국=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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