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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치사한 역사, 공맹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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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 답습 전근대적 입시
'강남=출세' 부끄러운 자화상


수능이 끝나고 나면 강남 전셋값은 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맹모(孟母)들이 삼천지교를 위해 강남을 향해 몰려들어서다. 덩달아 집값도 뛴다. 해마다 이맘때 예외 없이 강남행이 시작되지만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 그러니 강남에 가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두려움은 극에 달한다. 우리들에게 강남은 모든 사유를 가로막는 장애물과 같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 하는 정도라도 위안을 삼아보라. 금방 머리가 지끈거릴 거다. 강남을 디딤돌로 좋은 학교, 안정된 삶을 누리려는 사람들의 이면엔 이 같은 장삼이사의 한숨마저 내재돼있다면 말이 될런가.

여기서 치사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자. 조선의 과거제가 그것이다. 조선 후기 과거 합격자는 특정 소수 가문에 집중됐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왕조에서 300여명 이상 문과 합격자를 낸 가문은 모두 다섯이다. 전주 이씨 843명, 안동 권씨 354명, 파평윤씨 330명, 남양 홍씨 317명, 안동 김씨 304명 등으로 전체 합격자의 15%를 차지했다. 100여명 이상을 낸 가문은 모두 38개 가문, 총 7502명으로 조선 왕조 과거 합격자 전체 1만4000여명의 절반이 넘는다. 1%의 가문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 것이다. 이들은 오로지 유교 경전만 숭배했다. 그 외에는 모두 사문난적(斯文亂賊)이다. 게다가 신진 학문에 대해서는 각종 사화나 정변을 통해 말살하기 일쑤였다. 학문은 국가경영원리가 아니라 벼슬을 독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따라서 사대부의 관직 독과점 체제는 조선을 몰락시킨 요인 중의 하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실례로 인조반정 이후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배격했다. 사대부의 숭명정책은 변화하는 대륙 정세를 읽지 못하고 전란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았다. 끝내 인조와 그의 무리는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맞았으며 수많은 백성을 청나라 노예로 내줘야 했다. 이는 유교 논리가 가져온 결과다. 그럼에도 그들은 유교 경전에서 헤아나질 못했다. 그들로 해서 새로운 학문적 가능성은 모두 닫혔다. 새로운 학문과 세계관은 양반 소수가문의 기득권 상실과 다름 아니었다. 공맹의 가르침, 강상의 법도는 백성들에겐 그저 참혹함의 다른 표현이다.

최근 강남 혹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 출신들의 서울대 합격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점은 사법고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최근 사시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서울의 특수목적고 출신이고, 이들의 절반은 강남 출신이다. 과거제를 통한 관직의 과점처럼 오늘날 '강남=부촌=서울대=사법고시'의 등식도 계층의 고착, 다양성 부족 등으로 나타날 개연성이 높다. 그래서 입시제는 시대를 달리한 현대판 과거제도다.

유교 경전 외에 다른 학문,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나 암기 위주의 입시교육이 하등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먹힐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헌데 여기서 교육과 집값이 연동돼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 것처럼 그 속에 들어 있는 함의는 분명하다. 입시제가 어떤 몰락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강남을 향한 학부모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방안은 뚜렷하지 않다. 어떤 전문가, 지식인들도 폐해만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 강남의 집값을 해체하는 것이 답인지, 전국에 강남을 열 개쯤 만드는 게 답인지 아주 우매한 질문만 하는 처지다. 강북개발론, 서울대 해체론 등등 다 변종의 해법이다. 또한 본질을 비껴선 변죽거림이다. 해답을 내놓지 않는 전문가 혹은 지식인들이 살아 있는 한 여전히 공자, 맹자의 망령은 죽지 않는다. 강남 앞에서 전문가들의 절망과 굴복이 다음 역사에 어떻게 쓰여질는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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