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인 김 위원장은 두 명의 친동생 더 있었다. 1944년에 연못서 익사한 1944년생 김만일과 1946년생 김경희. 이밖에 이복동생으로 알려진 김평일도 있다. 하지만 김평일은 권력견제로 폴란드대사로 근무하면서 20년 넘게 북한 땅을 밟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부인인 성혜림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1971년생 이복(異腹) 큰 형 정남이다. 두번째 부인인 성혜림은 영화배우 출신으로 지난 200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인 고영희 사이에서 태어난 동복(同腹) 작은형이 정철이다. 김정철은 1981년생으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이어 태어난 막내가 김정은이다. 김정은은 1983년생이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은 왜 정남과, 정철을 뒤로 하고 3대 세습의 주인공으로 김정은을 택했을까?
김정남이 김위원장의 눈 밖에 난 더 큰 사건은 1990년대 후반 고위층 자녀들에게 "내가 후계자가 된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김 위원장은 세습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김정남은 북한에 입국하지 못하고 2009년 1월 이복(異腹)동생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북한 땅을 밟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복 삼촌인 김평일과 비슷한 '국제미아'가 된 셈이다.
김정철도 유력한 후보자로 꼽혔지만 지난 2006년 일본방송에 의해 독일의 에릭 클랩턴 공연관람 모습이 공개되면서 내부적으로 탈락위기에 놓이게 된다. 당시 일본방송은 "화면 속 모습을 볼 때 김정철은 몸매와 목소리가 여성처럼 변하는 '여성 호르몬 과다 분비증'"이라고 보도했다.
김정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8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후계체계 구축이 시작되면서부터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일선 학교에 김정은 선전자료를 배포해 학생들에게 가르치도록 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지 지도 때마다 김정은을 동행시켜 후계 수업을 진행해 왔다. 또 지난 6월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등극시키고 후계구도가 공식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양낙규 기자 if@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