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여! 구비구비 '망국의 한' 저리도 붉을까
내포땅 충남 예산 그곳에서 듣는 옛 이야기 셋
[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바람이 분다. 드높은 기상을 품은 함성의 바람이 몰려온다.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다. 680여년의 역사가 일장춘몽의 위기에 처했다. 잃어버린 나라의 부활을 외치는 백제인들의 타오르는 조국애와 의분에 불꽃이 일렁인다.
그리고 부흥의 새역사를 꿈꾼 백제인들의 열정이 예당호에 떠오른다. 붉게 물들인 예당호의 아침햇살은 밤새 보듬었던 군상들을 제자리에 돌려 놓는다. 백제인의 꿈도 제자리로 돌아간다.
내포(충남 예산ㆍ서산ㆍ홍성ㆍ태안ㆍ당진ㆍ보령 등)땅 예산은 곳곳에 '역사'를 담은 옛 이야기가 넘쳐난다.
백제 부활의 기치를 올린 임존성은 말할것도 없고 수덕사와 예당저수지, 여기에 교과서에 등장하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까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오래된 옛 이야기를 가꾸고 지켜가는 따스한 사람 냄새도 난다.
#이야기 하나-백제 부흥군의 한 서린 임존성
백제 멸망 후, 부흥의 기치를 들고 나섰던 유민들이 최후까지 격전을 벌였다는 성터들은 충남 이곳저곳에 전설로 전해지지만 역사기록은 임존성을 마지막 거점이라 말한다.
사적 제90호인 임존성은 예산 대흥면 상중리 봉수산 봉우리에 있다. 그 성을 찾아 가는 길은 험하다. 산 정상 무렵의 복원된 성곽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지만 경사면을 따라 난 길은 이리저리 굽어 있어 여간 가파른게 아니다.
임존성 지킴이를 자청한 박효신(010-3597-8390)씨의 안내가 없었다면 몇 번이고 헤매 다녔을 그런 길이다.
일부 복원돼 옛맛이 덜하긴 하지만 산 어깨를 따라 이어진 임존성은 웅장하고 아름답다.
임존성은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사비성을 지키는 외곽 성으로 만들어졌다. 부여까지 90리, 공주까지가 90리이니 웅진 천도이후 사비 도읍때까지 임존성은 지리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의자왕 20년(660년) 나당연합군에 멸망하자 백제부흥군은 변변한 무장조차 하지 못한 채 왕족인 복신과 승려 도침, 흑치상지의 지휘아래 임존성을 지켰다.
돌과 몽둥이만으로 10만명이 넘는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와 이를 지원하러 나선 명장 김유신의 신라군까지 격퇴했다. 그들은 하늘도 찌를듯 사기가 높았다.
그러나 기세를 떨치던 백제의 부흥군은 내부의 암투와 배신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박씨는 "부흥운동을 주도하던 복신과 도침 사이에 불화가 생겨 복신이 도침을 죽이고 권력을 독차지하면서 백제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가게 된다"고 말한다.
임존성도 3년반동안 부흥군을 이끌며 지켜낸 흑치상지에 의해 함락되는 불운을 겪는다.
백제 유민들의 한이 서린 그 성벽을 딛고 있다는 생각에 문득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 밟고 있는 이쯤에서 나라 잃은 유민들의 꿈과 좌절이 있었고, 나당연합군의 무자비한 아비규환의 살육전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1300여년전의 옛이야기속의 시간들이다.
임존성은 그 안에 깃든 역사 말고도 성곽 자체만으로도 찾아볼 만한 곳이다. 계단처럼 만들어진 석성을 오르면 까마득한 돌성벽 위에 서게 된다.
이곳에서 성곽을 한 바뀌(2.4km) 도는데 어린이 걸음으로 2시간이면 넉넉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우물이다. 임존성에는 우물이 세군데 있었다고 한다. 그중 가뭄때도 마르지 않았다는 임존성청수가 이곳에 있는 것. 지금은 마실 수 없는 물이지만 당시의 샘물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샘물 옆에 임존성청수라 쓰여진 표석이 묵묵히 서 있다.
성곽을 벗어나면 곧 봉수산 정상에 닿는다. 그곳에서부터는 임도와 만날 때까지 산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길이다. 작은 비탈이 두어곳 있으나 길을 따라 밧줄이 매여 있어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다.
임도에서 붉은 지붕의 민가를 만나면 목마름을 없애줄 약수터 가까이 내려선 것이다. 약수터의 물은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석간수로 물맛이 시원하고 깨끗하다.
성곽길을 따라가다 보면 발 아래 예당호와 대흥면 일대가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
산행을 즐기려면 산성 아래 대련사나 봉수산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해 성곽을 한 바퀴 도는것이 좋다. 길은 가파르지만 역사의 향기와 산림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이야기 둘-붉게 물든 예당호에 세월 낚는 강태공
예산군과 당진군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63년 완공된 예당저수지는 여의도의 3.7배에 이른다.
무한천과 신양천이 합수해 흘러드는 저수지에는 먹이가 풍부하다. 이 때문에 붕어, 잉어, 뱀장어, 동자개 등 담수어가 많아 중부권 최대 낚시명소가 된 지 오래다.
예당저수지는 초가을을 맞아 하루가 다르게 수면이 초록색으로 짙어진다. 사실 예당저수지는 사철 변화무쌍한 풍경을 연출한다. 복숭아꽃이 거울 같은 수면을 연분홍색으로 수놓은 봄과 버드나무 가지에 눈꽃이 피는 겨울은 대표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여름을 난 붕어의 씨알이 굵어지며 강태공들로 붐비는 초가을의 풍경도 봄과 겨울 못지않다.
최고의 낚시 포인트는 버드나무 가지가 눈길을 사로잡는 동산교 부근, 이곳에서 잡은 붕어로 조린 붕어찜과 어죽은 최고의 별미로 꼽힌다.
#이야기 셋-'형님먼저 아우먼저' 의좋은 형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로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실린 의좋은 형제의 실제무대가 예당저수지변에 있는 대형면이다.
조선 세종 때의 이성만, 이순 형제는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좋기로 소문나 조정에서 '효제비'를 건립했다고 한다.
이 비석은 당초 가방교 옆에 있었는데 예당저수지가 생기면서 수장될 위기에 처하자 대흥면사무소 옆 대흥동원으로 옮겨졌다.
동네 어르신들은 "옛날 대흥촌장인 이성만(윗들거리, 현 대흥면 상중리)과 동생인 이순(오리골, 광시면 월송리)이 살았다. 동생 순이 분가해서 따로 살게 되자 형제는 서로의 형편을 걱정해 밤에 몰래 볏섬을 상대의 집에 갔다놓곤 하다가 어느날 마침내 개방다리에서 형제는 볏섬을 진 채 만나게 되고 그제서야 서로의 볏섬이 밤마다 느는 까닭을 알게 되었다"고 전한다.
현재 면사무소 앞에는 이성만 형제가 낟가리를 진채 만나는 모습이 동상으로 제작되어 있다.
예산군은 이들 이야기를 소재로 예당호 테마공연장과 의좋은형제 공원일대에서 '옛 이야기축제'를 개최한다.
10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옛이야기축제는 지역 대표 축제로 '의좋은 형제'를 비롯해 심청전의 원형설화로 알려진 '원흥장','임존성 이야기' 등 예산지역에 전해오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채롭게 펼쳐낸다.
이밖에도 붕어잡기대회, 백제부흥군운동 뮤지컬, 전통시장 재현,관아체험 등 볼거리 체험거리가 풍성하다.
예산=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가는길=서해안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가다 당진나들목에서 대전 당진간 고속도로 진입, 예산수덕사 IC로 나오면 된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천안나들목에서 내려서 21번 국도를 타면 아산을 거쳐 예산으로 가 닿는다.
◇먹거리=예당저수지 낚시터 인근에는 민물어죽과 시래기를 넣어 졸린 붕어찜을 내놓는 식당들이 많다.
광시면의 광시한우마을은 충남을 대표하는 한우고기 음식점 거리다. 정육점을 겸한 음식점이 32곳이나 널려있다. 예산읍내에도 한우고기를 잘하는 집들이 있다 .그 중 한우리(041-334-6733) )는 육사시미와 한우 생고기가 맛깔스럽다.
◇볼거리=추사 김정희의 옛집인 추사고택은 예산을 대표하는 명소. 추사가 직접 제작한 석주(그림자를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백송 한 그루가 볼 만하다. 또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목조건물이다. 또 덕산면에는 윤봉길의사의 생가와 영정을 모신 충의사가 있다. 시간여유가 된다면 덕산온천에 들러 쌓인 피로도 풀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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