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부활 서재혁을 떠올리면 으레 베이스가 연상된다. 20년 이상을 함께한 악기. 그 애정은 신혼의 달콤함만큼 짙고 강렬하다. 물론 언제나 난기류는 아니다. 최근 전선 상황이 그러하다. 서재혁의 심경에 변화가 일었다. 사랑은 그대로. 하지만 외도의 조짐이 느껴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베이스 연주가보다 창작가로 불리는 게 더 기분 좋다.”

베이스에 쏟는 시간은 점점 줄고 있다. 대신 펜을 손에 쥐고 콩나물을 그린다. 곡선을 그리는 손길을 꽤 부드럽다. 작곡을 시작한 지 어느덧 17년. 베이스의 그늘 아래서 남모르게 실력을 키워왔다.


곡을 제작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음악인이 되려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여겼다. 창작은 주로 교회에서 이뤄졌다. 다양한 찬송가를 개발하며 경험을 쌓았다. 열정은 음악을 향한 꿈만큼이나 뜨거웠다. 의경 재직 시절에도 교회에 출석해 곡을 만들 정도였다.

“그 때 만든 곡들을 가끔 연주한다. 유치하지만 귀엽고 예쁜 느낌이 들어 동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의경 전역 뒤 서재혁은 더 많은 곡을 만들었다. TV에 등장하는 가수 포지션처럼 무대에 오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제작한 곡은 매번 불만족스러웠다. 찬송가 작곡으로 한정된 악상이 문제였다. 락 발라드는 넘을 수 없는 큰 산처럼 느껴졌다.


“이전까지 락 음악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심도 깊은 이해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창작의 기틀은 그룹 부활을 만나면서부터 조금씩 잡히기 시작했다. 발전에는 이중생활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따로 작곡 공부를 했다. 의문이 생기면 부활에서 작곡을 담당하는 리더 김태원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한때 김태원이 바퀴벌레처럼 여길 만큼 공세는 집요하고 날카로웠다.


서재혁의 성장은 부활이 새롭게 거듭나는 시발이 됐다. ‘노을’, ‘개미’, ‘또다시 사랑이’, ‘섬’, ‘파이란’, ‘오즈’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제작해 음악 폭을 넓혔다. 특히 2005년 작곡한 ‘노을’은 영화 ‘비열한 거리’의 홍보뮤직비디오에 실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서재혁은 자평한다.


“내 곡들이 그간 부활 스타일과 조금 다르다. 한정된 느낌이 짙던 부활 음악의 껍질을 깨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곡을 앨범에 담았지만 아직 그는 만족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곡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래서 매번 집에서 창문을 열고 한강을 내다본다. 악상을 떠올리는 그만의 방법이다.


“‘영화음악의 대부’ 엔니오 모리꼬네는 호수를 바라보면서 작곡을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한강이 보이는 오피스텔을 집으로 구매했다.”


그는 김태원과 같이 귀를 닫지 않는다. 재즈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한다. 계속 노래를 들어야 발상도 전환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기대한다. 폭 넓은 부활의 음악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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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는 편이다. 가끔 ‘음악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라고 흠칫 놀라기도 한다. 아무래도 부활에는 도움이 될 것 같다. 태원이형과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다보니 음악이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부활이 운영하는 카페 ‘코끼리 탈출하다’에서 바람을 늘어놓는 그의 귀는 이날 역시 흐르는 클래식에 쫑긋 세워져 있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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