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의 최정점에 있는 CEO. 그런데 기업을 경영하는 CEO도 다름아닌 월급쟁이다. 한발 더 나아가 대기업 CEO인데도 서슴없이 스스로를 '머슴'이라 칭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월급쟁이의 첫 발을 딛는 단계에서 이런 자조적인 말은 흔치 않다. 시작 단계에선 꿈만 생각하기 때문일 듯. 그런데 오랫동안 월급쟁이 생활을 하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머슴이라는 틀에 갇히는 사람은 더욱 많아진다. 왜그럴까? 직급이 높을수록, 많은 혜택을 받을수록 책임은 더해진다. 특히 기업에 근무하는 임원이나 CEO들이 체감하는 스트레스 지수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순간의 결정에 자신이 속한 기업의 존폐가 걸리게 되고, 수많은 직원들의 삶이 그 손에 좌지우지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예외적으로 출근길과 퇴근길에 상가를 2번이나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정 회장은 유가족을 위로하면서 "제대로 즐겨 보지도 못하고…"라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얼마나 빡빡한 직장생활을 했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얼마 전 삼성전자 부사장이 자살했다는 소식도 세간에 화제가 됐었다. 그는 그룹 내 최고 엔지니어에게 주는 삼성펠로로도 선정됐고, 차세대 CEO로 촉망받았던 인물이었으나 역시 월급쟁이의 틀 속에서 몸부림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대기업 임원이나 CEO가 돌연사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자살 소식도 왕왕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원과 CEO들에게 '스트레스'를 관리해주는 '모성(母性)경영'이 도입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삼성 LG SK 등 대기업은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자연치유센터 입소, 심기신수련 등 다양한 '스트레스 관리 테크'에 나서고 있다. 이런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이며,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월급쟁이 1000만명 시대에 아서 밀러의 대표적인 희곡 '어느 샐러리맨(세일즈맨)의 죽음'이 연상되는 것은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월급쟁이에 다름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보편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무엇일까? 답은 불쌍한 '월급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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