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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신 몸' 복제 돼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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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숨은 과학을 찾아라 4

[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국립축산과학원 정문을 통과하려면 철저한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축사를 방문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구제역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다.

축산과학원 사람들은 올 초 '전쟁'을 치렀다. 경기도와 강화, 김포 일대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축산과학원까지 번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축산과학원에는 우리나라 축산과학의 자원이라고 불릴 만한 가축들이 사육되고 있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축산과학원까지 침투한다면 축산업의 미래까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과학원 사람들도 혹시나 바이러스를 옮겨 올까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지냈죠. 어머니 탈상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안내를 맡은 '지노아빠' 우제석 연구관이 웃으며 말했다.
▲장기 이식용 형질전환 복제 미니돼지 지노(XENO)
이 날 축산과학원을 찾은 이유는 장기 이식용 형질전환 복제 미니돼지 '지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지노는 축산과학원이 건국대, 단국대, 전남대 및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함께 생산한 '작품'으로 사람에 대해 면역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초급성 항원인 Gal-T 유전자를 제어한 복제 미니돼지다. 세계적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였고 국내에서는 최초로 올린 성과였다.

그만큼 지노를 만나는 과정은 까다로웠다. 멸균된 소독복을 입고 덧신과 장갑, 마스크를 쓴 뒤 우 연구관의 안내에 따라 특별히 설계된 'SPF(Specific Pathogen Free/특정병원균제어)'돈사에 들어섰다.

SPF 돈사는 바깥의 세균이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열 때마다 안쪽 공기가 바깥쪽으로 밀려 나가는 양압식 건물이다. 축산과학원은 국내에서 최초로 SPF 돈사를 지으면서 모든 설계를 일일이 점검해야 했다. "당시 SPF 돈사를 지을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지하층부터 지상층까지 통째로 지어야 하는 건물이지만 하나씩 지어서 구조를 맞췄죠." 지노를 탄생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이 들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기이식용 연구 돼지인 지노는 무균에 가까운 상태에서 사육돼야 하기 때문에 태어나서부터 석달간은 SPF 인큐베이터에서 자란다. 돈사로 옮겨진 후에도 방사선 멸균 사료만을 먹고 배설물까지 전부 소독해 내보낸다. 돈사 운영비에만 연간 6억 8000여만원이 소요된다.
이만한 특별 대접을 받는 이유가 있다. 지노는 국내 이종장기이식분야가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초석이나 다름없다. 생명공학분야 선진국들은 지금 Gal-T 유전자 적중 복제 미니돼지의 생산은 물론이고 이들에 대한 산업재산권 확보와 유인원에 대한 이식실험까지 수행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이들 국가들이 보유한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는 독자적 면역거부반응관련 유전자들을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 300여명의 연구자가 투입돼 맺은 결실이 지노다. 체세포를 만드는 데만 3년여가 걸렸고 100여마리의 대리모에 복제 수정란을 이식해 천신만고 끝에 지노를 얻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지노를 '금동이'라고 부른다는 우 연구원의 설명이다. 축산연구원은 지노를 통해 이종장기이식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얻고 나아가 국제적 주도권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 1월 지노는 아빠가 됐다. 지노의 동결 정액으로 인공수정한 16마리중 2마리가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먼저 임신된 한 마리에서 총 4마리의 새끼가 태어났고 유전자 검사 결과 암수 한 마리씩 2마리에서 지노와 동일하게 Gal-T유전자가 제어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지노의 후대들은 동결정액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성과로 지노처럼 국가 유전자원 관리 차원에서 보존할 필요가 있는 돼지들의 정자세포를 동결 보존해 활용하는 길이 열렸다.

우 연구관은 "지노가 아빠가 되면서 장기이식용 동물로서 진짜 가치를 실현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노는 Gal-T 유전자가 완전히 제어된 것이 아니라 반만 제어된 '이형접합체'였다. 실용적 가치를 검정하기 위해서는 동형접합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지노와 같은 특성을 가진 암컷이 태어났어요. 이 돼지로 후대를 생산하면 Gal-T 유전자가 완전히 제어된 돼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장기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이식할 수 있는 장기가 부족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에도 약 2만여명의 환자가 장기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축산과학원은 지노와 그 후대들을 면역거부반응이 비교적 적은 췌도, 판막, 피부이식 등 부분장기 공급원으로 우선 활용할 계획이다.

"2013년에는 의학계 이식 연구자들에게 연간 30마리 정도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24시간 내내 번갈아 지노를 지켜보는 등 자기 자식처럼 정성을 기울이는 우 연구관과 담당 연구진들은 지노를 통해 축산과학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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