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txt="박준영 후보";$size="200,281,0";$no="2010060222454851219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1946년 전남 영암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준영 전남지사 당선자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72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언론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가 극에 달했던 1980년 7월 신군부의 '언론계 숙정'으로 해직된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오하이오대학에서 신문학으로 석사를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7년 중앙일보 외신부기자로 복직하고 뉴욕특파원을 거쳐 중앙일보 편집부국장까지 지내며 언론인의 길을 계속 걸었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은 1997년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사상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언론계를 떠나 대학강단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새정부 출범 직전인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을 받는다. 그는 고심하다 청와대행을 결심했다.
그가 맡은 첫 보직은 국내언론비서관(1급). 이후 공보수석 겸 청와대 대변인, 국정홍보처장을 거치며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김대중 대통령의 '입'이자 국민의 정부 얼굴로 역할을 했다.
그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순간으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꼽는다. 남북간 화해의 장을 연 역사적 현장에 동행했고 그 상황을 외부에 알리고 기록하는 역할을 해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2000년 6월 15일, 훗날 '6.15선언'으로 알려진 남북간 화해 합의문을 직접 발표했던 그 긴박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국민의 정부 이후 그는 정치인으로 대변신했다. 2004년 4월 고 박태영 전남지사가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당은 열린우리당과의 분당과 탄핵바람으로 2004년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한 상황이었다.
민주당 후보로 추대된 그는 민주당 전남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여론조사에서 상대후보에게 두 배 가량 뒤져있던 상황을 대역전시키며 당선되는 저력을 보였다. 이어 2006년에는 박주선 현 국회의원과 경선 구도가 펼쳐졌지만 박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결국 단독후보로 결정돼 비교적 수월하게 재선에 성공했다.
3선 도전은 주승용 국회의원과 이석형 전 함평군수의 협공에 경선 초반에는 순탄치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 의원과 이 전 군수가 결국 경선에 불참함으로써 이번에도 단독으로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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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당선자는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딸 정도로 학구적인 스타일이며 공보수석 재직시절인 2001년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기도 했다. 전남 영암 출신인 그는 부인 최수복(56)씨와 사이에 3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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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광 기자 kohk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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