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기고
"생물학과 건축학이 만나면 아프리카 한가운데서도 에어컨 없는 시원한 빌딩을 세울 수 있다."
경영컨설턴트 프란스 요한슨은 자신의 저서 '메디치 효과'에서 과학기술과 타 분야 간 융합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효과를 이처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건축가 믹 피어스는 흰개미들이 탑을 짓는 방법에 착안해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냉방시설 없이도 자연통풍으로 최적의 온도가 유지되는 쇼핑센터를 건립, 이를 입증한 바 있다.
21세기는 급속한 변화와 함께 불확실성이 동반되는 시대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 다양한 분야 간의 융합으로 만들어지는 창의적 산출물이 새로운 가치의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초 학문 간 융합은 물론이고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융합현상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문화예술 간 융합은 오늘날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이 타 분야에 단순히 기계적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모티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미디어아트, 인터랙티브 퍼포먼스와 같은 융합창작물로 거듭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도 한다.
예컨데 화려한 레이저쇼는 과학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예전에는 과학과 예술이 자신만의 영역에서 전문가에 의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 왔다. 과학과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른 별개 영역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과 예술 간의 엄연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합리성과 예술적 상상력으로 표출되는 과학과 예술 분야의 창의성은 근원적으로 유사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과학과 인문사회, 문화예술은 은연중 상호작용 하면서 소통과 융합 활동을 지속해왔다. 이제 과학기술은 예전처럼 직접 대중을 만나서 대화하고 알리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인문사회, 문화예술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서로의 담을 낮추면서 자연스럽게 협력·융합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이질적 영역의 교차점에서 발현되는 창의성에 특별히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선도해 창의적 문화를 만들어가는 '융합문화'는 문화적 변화와 문명의 진화가 빚어낸 새로운 문화 트렌드다. 과학시각화, 과학스토리텔링, 융합창작공연 등을 통해 과학과 인문·예술의 흥미로운 만남이 이뤄지고 있고, '융합카페'에서는 분야 간 전문가가 만나 소통하고 일반대중이 직접 참여해 융합문화를 체험하기도 한다.
최근 성황리에 개최됐던 '명화 속 과학체험전'은 광학효과, 원근법, 프랙탈 이론 등 명화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과학 원리를 딱딱한 이론이 아닌, 손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느끼는 체험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어린이와 학부모들의 관심과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 융합형 과학전시회는 수학·과학교사, 동화작가, 프로그래머, 전시 큐레이터, 건축가, 미술복원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협업이 일궈낸 '창의적 융합문화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융합과 소통은 변화의 트렌드이자 미래사회의 키워드다. 특히 서로 다른 부문의 사람과 사람, 조직간, 계층간, 나아가 국가간 소통과 대화는 상호이해의 차원을 넘어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변화를 선도하는 융합문화가 피상적 결합이나 단순한 겉포장의 융합에 그치지 않으려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뿐 아니라 분야별 전문가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과 함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면 융합문화는 창의적인 미래사회에 역동성과 다양성을 불어넣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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