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르노삼성 홍보본부의 요청을 수락하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를 선택한 이유가 뭐였을까? 아마도 아래 이유들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아니면, 두 아이를 둔 47세의 아버지라서? 아마도 와인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군. 와인은 오래되면 될수록 좋다고들 하잖아.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일테지!'
'아냐, 내 아버지, 조부, 증조부 모두 4대를 걸쳐 와인농장에서 자랐으니까 그 이유일지도 몰라. 와우! 그렇다면 내 피 속에 와인이 흐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나 와인이나 뿌리가 매우 중요하다고들 하잖아'
어찌되었건, 위의 모든 이유일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것이다. 앞으로 와인칼럼을 써나갈 사람으로서 내게 중요한 것은 와인이 사람들의 삶, 특히 프랑스인들에게 그토록 큰 중요성을 지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에게 있어서 와인은 우리의 전통, 문화일 뿐만 아니라 오래된 러브스토리와도 같다!
자, 그럼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앞의 내 소개글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와인에 대한 나의 사랑이야기는 일찍이 내 가족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실제 와인의 역사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와인이 다양한 문학 속에 종종 등장한다는 사실은 흔히들 알고 있지만, 그 시작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성경일 것이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경 속에서 와인은 크리스찬을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등장한다. 예수는 결혼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고, 노아는 대홍수가 끝나자 포도나무를 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으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포도주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또한 결혼이나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축제를 열어 포도주를 마셨다고 그의 작품 속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와인에 대해 언급한 문학은 세기를 넘어 수없이 많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문학 속에서 그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와인과 인간은 함께 성장해 왔으며,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친구와도 같이 아마도 함께 살아갈 운명인가 보다.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와인에 관한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이 전해지긴 하였지만, 와인이 진정한 '병 속에 담긴 역사 (History in a bottle)'라는 사실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러분은 다음 중 과연 몇 가지 사실을 알고 있는가?
-와인은 수천 년 동안 약과 소독제로 사용되어 왔다.
-그리스인들은 맥주나 희석하지 않은 와인을 마시는 행위를 야만적인 행위라고 규정한 와인 속물(wine snob; 와인에 대해 잘 모르면서 고상한 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스의 와인무역은 프랑스 사온강바닥 한 쪽에 세워둔 암포라(와인 운송에 사용되는 항아리)에 보관된 와인의 양이 500만~1000만 리터에 달할 정도로 왕성했다.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알렉산더 3세가 1251년 결혼했던 당시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마신 총 와인의 양은 무려 2만5500 갤런에 달했다. 이것은 지금의 와인 병 크기를 기준으로 해볼 때 135,000병의 와인에 달하며, 이는 당시 하객들이 소비했던 사슴 1300마리, 닭 7000마리, 멧돼지 170마리, 청어 6만 마리, 그리고 빵 6만8500덩어리를 모두 쓸어버릴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베니스의 거대 조선소 관리자들은 근로자들이 근무시간 동안 원하는 양만큼의 와인을 충분히 마실 수 있도록 1600년대에 '와인분수'를 제작했다(레드 와인을 내뿜었음).
-페루는 18세기에 엄청난 양의 와인을 생산했다. 오늘날에도 같은 양의 와인을 생산한다면, 페루는 세계10대 와인생산국가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와인산업은 골드러시가 끝나고 금 채광에 실패한 많은 시굴꾼들이 그들이 가진 땅에 포도나무를 심기로 결정하면서 1850년대에 시작되었다.
-19세기 프랑스의 금주 운동가들은 증류주의 소비 감소를 위해 와인 생산량과 소비량을 증가시킬 것을 요구했다.
-러시아혁명으로 인해 엄청난 양의 샴페인을 마셔대던 러시아 황제와 그 왕실에 와인을 수출할 길이 막히게 되자 일부 샴페인공장들은 몰락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량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상기 와인에 얽힌 사실들을 통해, 여러분은 이제 와인이라는 이 오래된 음료에 담긴 역사와 문명의 무게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있는 분들이 와인을 다룰 때는 항상 우리 공동의 세계적인 유산 중 하나로서 경의와 품위를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이제 감히 나는 여러분에게 혼자이건,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하는 중이건 이에 관계없이, 와인의 역사와 문명에 대한 생각 없이는, 와인병을 따지도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칼럼이 조금이라도 독자들의 와인 테이스팅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주 와인에 대한 나의 사랑이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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