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 시인의 나주, 왕건과 버들아씨의 로망스가 숨쉬는 곳<3>

왕건과 버들아씨가 눈빛 마주한 완사천



나주목의 유적인 금성관과 나주향교를 둘러본 후 ‘타임머신’을 다시 돌린다. 천 년 전의 나주와 21세기의 나주 사이에서, 나주의 가장 자랑스러운 모습은 언제였는가를 엿보려한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나의 경우는 확실히 ‘왕건과 버들아씨의 역사적인 로망스’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미 ‘오페라 장화왕후’의 대본을 썼고 이것이 2008년 가을, 두 차례 광주의 ‘빛소리오페라단’을 통하여 무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왕건과 버들아씨에게 매료된 것은 그들이 행한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못지않게 삼천리 반도에 최초의 ‘자주적 통일국가’를 세웠다는 점이다.



나의 몸과 정신을 ‘나주’의 역사와 토양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으려 하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이 땅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클릭하면서 써내려간 1막3장의 ‘오페라 장화왕후’. 나는 이 작품을 원래는 3막으로 준비하였으나 무대 사정과 시간, 제작 여건을 고려하여 1막3장으로 마무리 짓고 가능한 한 나의 몸과 정신을 ‘나주’의 역사와 토양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으려 하였다. 물론 21세기의 오늘 속에서 고려의 왕건과 장화왕후를 불러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페라 1장은 ‘서곡’ 아리아를 통해 막이 오른다. 고려의 명승 선각대사 형미가 노래를 부른다.

신라 천년이 수명을 다하고 새 시대 찬란한 새벽은 다가오는가.
서라벌의 왕과 신하들이 대의를 좇지 않고 바른 도리 잃었으매
하늘도 돕지를 않고 하얀 옷 못난 백성들만 밤낮으로 갈팡질팡
역사가 부르는구나 길 잃은 백성들 민족의 새 영웅을 찾는구나
궁예도 아니고 견훤도 아닌 우리들의 대왕, 왕건을 부르고 있어
여기 후백제 땅 나주고을에 그를 맞을 버들아씨가 기다리고 있네
삼백 리 영산강 휘돌아 가는 금성산 고을에 우리들의 버들아씨
장화왕후 님 살어리 살어리랏네 나주백성들 더불어 살어리랏네

아리아가 끝나면 궁예의 명령으로 나주지역을 공략하러온 왕건 장군이 영산강을 따라 올라와 후백제의 견훤과 대적한다. 이른바 ‘금성산싸움’을 벌이게 된다. 서기 911년, 이때 왕건은 자기보다 17세 연하인 버들아씨를 만나면서 열렬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비록 짧은 만남이지만 이 뜻밖의 ‘로망스’로 버들아씨는 제2대 고려왕이 될 무(혜종)를 잉태한다. 이리하여 당시 34세의 왕건 장군은 나주의 평민?호족세력들과의 관계가 깊어지고 지역 민심을 다독거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왕건과 버들아씨의 러브스토리는 전설적이다. 그리고 신화적 요소까지도 겸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렇듯이 그 나라의 건국은 전설과 신화로 무장된 경우가 많다. 그리스가 그러하며, 로마가 그러하다. 인도가 그러하며 중국이 그러하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 내가 찾아간 완사천은 고려건국의 주인공인 왕건과 버들아씨(장화왕후)로 하여금 클라이맥스를 이루게 하는 중요한 장소이다.



‘완사천’에서 왕건과 버들아씨의 역사가 시작된다


나주시청 현관에서 300미터 지점에 위치한 ‘완사천’은 옹달샘보다 조금 큰 모양이다. 행정구역상 흥룡동에 속하는 이 우물가에서 왕건과 버들아씨의 역사가 시작된다. 정인지의 ‘고려사’를 보면 버들아씨는 중소호족세력 출신으로 전하여진다. 부친은 오부순이고 모친은 덕교이다. ‘버들아씨’라고 더 많이 알려진 오씨가 왕건 장군을 만난 것은 910년 전후로 보여지는데 혜종이 912년 태생이기 때문이다.


버들아씨는 왕건을 보기 전에 꿈을 꾸었는데 포구의 용이 자신의 배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다. 그리고 며칠 후, 수군장군으로 나주에 진주한 왕건이 흥룡동 쪽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떠 있지를 않는가.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왕건이 부하 장군들을 대동하여 완사천 우물가에 다가가니 버들아씨가 빨래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왕건이 점잖은 말로 “낭자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소이다!” 라고 말하자 버들아씨는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왕건 장군에게 바친다. 참으로 기특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로다! 바로 이와 같은 연유에서 왕건과 버들아씨의 운명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후백제의 영토인 ‘나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 일찍이 서기 903년 3월 금성산에서 견훤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바 있는 왕건은 금성을 ‘나주’로 개명한 터이다. 풍부한 농산물과 호족세력에 힘을 입은 왕건은 이곳을 군사거점화시키고 ‘영산강 물줄기’를 관리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나주는 후백제권의 심장부이자 경제적 요충지로 당 나라의 선진문물을 접근하기가 용이하고 당 나라 유학생, 선승(禪僧)들이 들어오는 길목으로서 영산강이 그 중요한 루트 구실을 한다.



역시 왕건의 후삼국통일의 배후는 나주를 중심으로 한 선승세력이다


역시 왕건의 후삼국통일의 배후는 나주를 중심으로 한 선승세력이다. 왕건이 나주정벌에 성공하여 청해진 세력을 재건하고 남해안 일대를 장악하자 중국에 유학하고 있던 선사들이 속속 왕건의 선단에 의탁해 나주지방으로 귀국하기 시작한다. 선승들은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회진으로 상륙하는 것이 관례였다.


맨 처음 회진으로 돌아온 대선사는 가지산문의 선각대사 형미(864~917)였다. 형미 스님은 강진 무위사 주지가 되어 이곳 민심을 수습하는데 앞장선다. 이와 함께 왕건은 당 나라에 가 있던 큰스님들을 귀국케 하여 치밀하게 새로운 나라에로의 터를 닦아간다.


‘오페라 장화왕후’

‘오페라 장화왕후’에 맛을 더해주는 사람들은 장화왕후의 어머니 덕교와 아버지 오다련군, 왕건의 심복 박술희 장군, 선각대사 형미 스님과 마을사람들, 버들아씨의 친구인 마을처녀들의 빛나는 연기와 노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리아나 합창 등의 노래가사는 가능하면 관객들로 하여금 고려시대 적의 정서와 천년의 추억을 맛볼 수 있도록 ‘가시리’ ‘청산별곡’ ‘도이장가’ 등 고려가요를 차용해 만든 것이다.
오페라 제2장은 후백제의 견훤과 싸우기 위해 수군을 이끌고 나주포구를 들어온 수군대장 왕건이 휘하 부하들과 작전을 펴면서 금성산 아래 흥룡동 마을을 예찬하는 노래로 시작한다. 이때 버들아씨가 완사천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순간이 포착된다. 버들아씨와 왕건이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노래가 옥타브를 높인다.



버들아씨와 왕건이 첫 만남이 이루어지고 사랑의 노래가 옥타브를 높인다


오페라 제3장은 전장을 향해 길을 떠나는 왕건 장군과 버들아씨의 이별 장면으로 달구어진다. 그러나 버들아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선각대사 형미, 나주지방 호족들과 마을사람들은 무대를 보다 역동적인 합창으로 이끌어 올린다. 이들이 합창은 앞으로 전개될 왕건의 민족대통일사업에 바쳐짐은 물론이다. 오페라 마지막에서 주로 나주인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노래는 천지를 흔들어 깨우듯이 우렁차고 장엄하다.


삼백 리 영산강 휘돌아 가는 금성산 고을에 우리들의 버들아씨
장화왕후 님 살어리 살어리랏네 나주백성들 더불어 살어리랏네
청산에 살어리라서 금성산에 살어리라서 우리 왕건왕 기다리네
남으로 한라산 북으로 백두산 뛰어넘을 왕건왕 애타게 부르네.


왕건의 나이가 59세가 되던 해, 태자 무(훗날 2대 혜종)가 후백제 신검을 정벌하기 위해 경북 선산에서 전투를 벌인다. 그 결과 후백제는 최후의 결전 끝에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왕건은 드디어 후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서기 936년 6월이었다. 죽기 7년 전, 왕건은 삼천리 반도 이 땅에 자주적 통일국가의 깃발을 꽂은 것이다. 그래서 ‘오페라 장화왕후’는 ‘통일오페라’로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왕건의 ‘고려건국신화’가 군데군데 남아서 꿈틀거리는 나주 시내를 벗어나 ‘몽탄’으로 향한다. 꿈 몽(夢)에 여울 탄(灘)이라! 차를 달리다가 때마침 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에게 물어보니, ‘몽탄’이라는 지명이 두 군데가 있다고 말한다.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나주군 몽탄과 무안군 몽탄으로 나눠진다고 한다.



“왕건은 영산강변 이 지점을 놓고 ‘몽탄’이라고 명명했다는군요”


아, 강바람이 시원하다. 영산강 위에 길게 걸린 몽탄대교를 건너 몽탄역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묻는다. “김준태 시인님, 후삼국 통일전쟁 당시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에 쫓긴 적이 있었다지요. 그런데 그 무렵 꿈에 나타난 신령님의 ‘바로 지금 강을 건너라’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왕건은 무사히 영산강을 건넜다지요. 그래서 왕건은 영산강변 이 지점을 놓고 ‘몽탄’이라고 명명했다는군요.”


그래서 왕건은 살았지요. 꿈에서 가르친 대로 영산강을 건넜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을 벗어난 것이었지요. 아무튼 나로서도 ‘몽탄’이라는 이름이 참 매력적입니다. 즉흥 한편을 들려주고 싶은 날입니다. 젊은 아우들과 영산강변을 달리고, 몽탄역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캔 맥주 하나를 마시기도 하였으니 즉흥 한 수를 영산강 물에 띄웁니다. 시 제목을 가져다 붙인다면 [영산강]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 썼던 시에다 다시 살짝 새 옷을 입혀 보았습니다.


그대 흘러라
삼백리 구비 구비
옛사랑도 잠재우며
천년을 흘러, 흘러라


바다로 흐르며
우리와 더불어 이윽고는
하늘로 하늘로도 흐르는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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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부른 노래가 있다면
동백꽃 망울도 몇 송이 피워 두고
목포항 어귀쯤에서


흘러, 솟구쳐라
우리들 첫사랑의 눈동자 영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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