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생존해있는 전직 대통령과 DJ와의 인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김 전 대통령의 잇단 서거로 한국에 남아있는 전직 대통령은 김영삼ㆍ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등 3명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기도 했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YS라는 영문 애칭으로 사랑받았던 김 전 대통령은 역시 DJ라는 불린 김 전 대통령과 필생의 라이벌이자 동지였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연관된 김대중 내란음모 혐의로 DJ가 사형을 언도받는 등의 악연을 맺었다. 아울러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 이후 여소야대의 불안한 정치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3당합당을 통한 보수대연합을 결성해 남을 정치적 근거지로 하는 DJ 고립화 전략에 나서 각을 세운 바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는 DJ와 함께 한국 현대정치의 산증인이다. 정치 9단으로 불린 두 전직 대통령은 독재정권 시절 기나긴 민주화 투쟁을 선도하며 한국 정치를 이끌어온 쌍두마차였다. 양김은 특히 1971년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제창, 한국 정치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1987년 이른바 1노 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맞붙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서 실패하며 각자의 길을 걸었다.
1992년 대선에서는 YS는 대권을 쟁취하며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고 DJ는 대선 4수 끝에 1997년 대선에서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YS는 DJ와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평생의 민주화 동지에서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 역할로 돌아섰다. 하지만 DJ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던 YS 역시 세월의 무게 속에 화해를 선택했다.
YS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불과 며칠 앞둔 지난 10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전격 방문해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DJ를 위로했다. YS는 이 자리에서 "나와 김대중 대통령은 젊을 때부터 동지 관계였다. 협력도 오랜 기간 했고, 경쟁도 오랜 기간 했다. 둘이 합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를 이룩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고 밝혔다. 특히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는 아마 미얀마처럼 됐을 것"이라면서 "그때는 (우리가) 목숨 걸고 싸웠다. 우리 둘은 특수한 관계였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병문안을 화해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제 그럴 때가 됐지 않았느냐. 그렇게 봐도 좋다"면서 "제6대 국회 때부터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로 애증이 교차한다. 이희호 여사에게 '모든 세상에 기적이라는 게 있으니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으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1987년 대선 이후 20여년 동안 대립과 반목을 거듭해온 정치거목이 극적으로 화해의 물꼬를 튼 것. 앞서 YS는 2000년 DJ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거친 비난공세를 퍼부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 DJ가 이명박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비판하자 "그 입 닫으라"고 독설을 날릴 정도로 양측의 감정은 최악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80세가 넘은 고령이지만 여전히 배드민턴과 조깅을 즐기는 등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경남 거제 출신으로 1956년 제3대 민의원으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5ㆍ6ㆍ7ㆍ8ㆍ9ㆍ10ㆍ13ㆍ14대 국회의원을 거쳐 92년 대선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끟전두환 전 대통령=전 전 대통령은 서거한 김 전 대통령과의 악연이 깊다.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이른바 12.12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국 전면에 등장한 뒤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을 거쳐 권좌에 올랐다.
이 때문에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던 DJ는 전두환 정권시절 모진 탄압을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의 배후로 지목된 것은 물론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아울러 집권 이후 전 대통령을 사면복권한 인연도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31년 경남 합천 출신으로 1955년 육사 11기를 졸업한 뒤 국군 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 부장 서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거쳐 1980년 8월 제11대 대통령에, 1981년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퇴임 이후에는 이른바 5공비리 청문회 등의 여파로 백담사로 유배를 떠났고 문민정부 시절에는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12.12 군사쿠데타와 관련, 사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는 등의 고초도 겪었다.
전 전 대통령은 고령에도 건강이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의 예방을 받을 때에도 호탕한 웃음과 활발한 언행으로 언론의 주목을 꾸준히 받아왔다. 전 전 대통령은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앞서 지난달 1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쾌유를 바란다며 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노 전 대통령 역시 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DJ와 악연이 적지 않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는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노 전 대통령은 권좌에 오른 이후 여소야대라는 불안한 정국운영의 반전을 위해 김영삼, 김종필 등과 손을 맞잡은 3당합당을 감행했다. 이는 DJ의 영향력을 호남권으로 고립화시키는 전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대구 출신으로 1955년 육사 11기를 졸업한 뒤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보안사령관, 내무부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정당 대표 등을 거쳐 87년 대선에서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퇴임 이후는 천문학적인 비자금 사건으로 95년 구속됐으며 98년 특별사면을 통해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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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이후 매스컴의 관심을 피한 채 조용한 칩거생활을 유지해왔다. 되도록 공식 노출을 삼간 것은 물론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에도 건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최근 건강 상태는 언론보도를 통해 간간히 위독설이 흘러나올 정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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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기자 skzero@ 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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