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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그린스펀 그리고 평균회귀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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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 징계는 금융위기 해법도 결론도 안 돼

야구와 농구 등 프로스포츠팀이 한 시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통산 구단주는 코치나 감독을 해임하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는 경우가 많다.

또 실제로 감독을 교체한 다음 해에 전년 꼴찌를 했던 팀이 중간 이상의 성적을 거둬 구단주가 "아주 적절한 시기에 감독을 교체한 성과를 봤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기업의 경우도 한 해 실적을 마무리하고 났을 때 순이익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시장점유율이 부진해졌으면 대주주 또는 이사회는 CEO 교체를 염두에 둔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주주의 친인척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사퇴의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다.

기업 역시 CEO를 바꾸고 나면 그 다음해 회사 실적이 어느 정도 개선되는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코노믹 씽킹'의 저자 로버트 프랭크 교수는 이를 두고 '평균 회귀의 법칙'이라고 일컫는다.
특정한 해에 뛰어난 활약을 보여 신인왕을 받은 선수가 그 다음에 그에 버금가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그 선수가 특별히 못해서가 아니라 그 선수의 평균 실력 수준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프랭크 교수는 이전 리더를 해고하면 조직의 상황이 나아진다는 사실만으로 리더를 해고하는 것이 올바른 조치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인 황영기 현 KB국민지주 회장에 대한 징계가 예상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현 직책에서 물러나야 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지만 일단 황 회장이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금융지주 회장 및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미국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크레딧디폴트스왑(CDS) 등 파생상품 투자를 시작했고 투자금액 90%인 1조6000억원을 손실처리했다는 것이 징계의 주요 배경이다.

황 회장은 전문경영인이다. 우리금융지주의 대주주는 예나 지금이나 예금보험공사다. 금융감독을 책임진 곳은 금융감독원이다.

전문경영인은 회사 수익을 위해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고 세계 선진금융기법에 정통했던 황 회장이 주변 압력이었든, 본인의 판단이었든 투자에 나섰다.

그렇다면 대주주인 예보와 금융당국은 과연 CDS와 CDO에 대한 위험평가를 제대로 했는지, 그리고 무려 3년 동안 투자가 지속될 때 전문경영인과 어떤 교감을 했는 지 궁금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시속 200킬로 미터로 달리는 운전사를 말리 지 않은 채 뒤에 느긋이 앉아있던 사장이 사고가 난 후에야 운전기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과도 같다.

'손실을 봤으니 책임을 지라'는 대전제를 적용시킨다면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굳이 해외진출을 할 이유도, 새로운 금융상품 개발 및 투자에 나설 하등의 이유가 없다.

금융위기와 같은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은행은 대출만으로도 먹고는 살 수 있다.

그 만큼 선진 금융국으로 나가는 길은 요원하다.

황 회장이 사고를 쳤고 그 이 후 바뀐 CEO가 우리금융의 실적을 개선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년 9월 리먼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도, 유럽도 손쓰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금융위기 이 후 '시장평균'으로 회귀하고 있는 지 모를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경제학 멘토로 존경받는 로버트 교수의 지적대로 말이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지금의 자산버블과 금융위기 뿌리 저 깊은 곳에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장이 있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9년간 미국 역사상 최장수 연준 의장을 역임한 그린스펀은 초저금리를 유지하며 미국 부동산 버블을 야기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버블이 바로 서브프라임 등을 재료로 CDO나 CDS 같은 고위험 쓰레기 금융상품을 탄생시킨 것 역시 작년 금융위기 이 후에서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금융당국, 그리고 예보나 금감원도 알게 됐을 터이다.

이번 금융위기 결말은 '손해 끼친 누구 하나 붙잡아 명예라도 실추시켜 분풀이하고 덤터기 씌우고 끝낼 일'이 아니다.

금융시스템 자체의 구조개혁이 요구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그린스펀도 막지 못한 금융사들의 고위험 고농도 쓰레기자산에 대한 투자책임을 한국의 전문경영인이 지는 것은 참 '아이러니'할 수 밖에 없다.

박성호 기자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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