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새 색시 옥새 옷고름을 던져 놓은 것 같은 섬진강<3>

빈 도시락을 싣고 집에 올 때는 시끄러운 소리가 집에 까지 따라왔다



어느 해 민세가 태어났고, 또 몇 년 있다가 민해가 태어났다. 어머님은 무척 행복해 했다. 손자를 얻어 날마다 안아주고 업어 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지금도 그렇지만 시골 어머니들은 손자를 안고 업고 키우는 어머니가 극히 드물었으니까. 들에 갔다 오시면 어머니는 얼른 민해를 업고 다른 일을 하시거나 마실을 다니시곤 하셨다. 겨울철이면 늘 어머님이 아이들을 보셨고 아이들은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의 쭈굴쭈굴한 젖을 만지며 잤다. 이 따끔 너그 아부지가 다 뜯어 먹어서 이렇게 생겼다고 그러시면 민세나 민해가 뜯어먹어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세어 나오곤 했다.

나는 그 집에서 가까운 조그마한 초등학교 선생이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 들고 학교에 다녔다. 자전거를 가지고 학교에 다닐 때는 자전거 뒤에서 밥이 어찌나 흔들리던지 반찬이 엉망이 될 때도 있었고 빈 도시락을 싣고 집에 올 때는 시끄러운 소리가 집에 까지 따라왔다. 어쩌다 아내가 한가한지 민해를 업고 민세 손을 잡고 마을에서 훨씬 벗어나 들 가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까지 마중을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민세를 업고 들길을 걷곤 했다.


어쩔 땐 민세와 민해가 코를 이만큼 코에 물고 훌쩍훌쩍 울며 마중을 나올 때도 있었다. 비가 오면 아내는 꼭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집에 오면 나는 아이 둘을 보았다. 민해는 업고 민세는 손잡고 강변에 나가 강변 꽃밭에서 뒹굴며 놀거나 물가에서 놀다가 집에 와서 씻겨서 밥 먹여 잠을 재웠다. 민세는 업어 재우곤 했다. 민세를 업고들에서 늦게 돌아오시는 어머님 마중을 나가기도 하면 어머님은 민세를 받아 업기도 했다. 민세는 업고 길을 걸으며 “호랭이 온다 호랭이와.” 그러면 내 등에 딱 붙으며 잠이 들었다.

아이들을 씻겨 밥 먹여 재우고 나서 아내와 나는 빨래도 개고 책도 보고 오래오래 이야기도 하다가 어머님이 마실에서 돌아오시면 아내는 또 얼른 어머니와 이야기를 오래오래 어머니 방에서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또 아내가 얼른 우리 방에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신문을 보거나 내가 글을 써야할 눈치를 보이면 아내는 얼른 이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주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집에서 살았다. 아, 지금 티 없이 고운 하늘아래 단풍 물든 산 속에 묻힌 집, 아름다운 그 집 우리 집. 그 집은 나무와 풀과 흙으로 된 아주 작은 집이다.




강물 위에 내리는 눈
-겨울 섬진강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온다. 내가 사는 곳은 산악 지대여서 눈이 참 많이 오는 편이다. 한번 눈이 오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처럼 눈이 온다. 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누가 눈을 삼태기로 퍼붓는 것처럼 눈이 온다. 그렇게 눈이 오면 사람들은 눈이 온다고 하지 않고 “누가 눈을 퍼 붓는구먼, 퍼 부어” 한다. 눈이 많이 온 날 아침 마루에 서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눈뿐이다. 사람들 걸어 다녔던 길도 사라지고, 사람들의 산 흔적인 논도 밭도 다 지우고, 앞 강 언덕에 있는 우람한 정자나무에도 눈은 쌓여 마치 하얀 꽃나무처럼 보일 때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 위에 소복소복 쌓여 있는 눈 중에서 나는 징검다리 위에 쌓여 있는 눈을 제일 좋아 한다. 눈을 소복하게 쓴, 강물에 거꾸로 비친 징검돌의 모습은 고요하다. 아직 아무도 강을 건넌 사람이 없는 징검돌 위에 쌓인 눈은 이 세상의 것인데도,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어렸을 때는 창호지 문에 문구멍을 뚫고 산에, 강에, 논과 밭에, 어머니 물동이 속에, 마당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문구멍으로 창밖을 보면 동생들도 자기키에 맞게 문구멍을 뚫었다. 저렇게 많은, 저렇게나 예쁜 하얀 눈송이들이 어디에 있다가 저렇게 이 세상으로 가만가만 내려오는 것일까.



징검돌 위에 쌓인 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눈이 오면 산이 뿌옇게 그려진다. 비가, 삼대 같은 소낙비가 내릴 때도 산의 모습은 아름답게 살아나지만 눈이 그리는 산은 더 아름답다. 산을 그리며 하얗게 내리는 눈은 강물로 사라진다. 하얗게 내리는 눈들이 강물에 닿기가 무섭게 깜박 꺼지는 모습도 신비하다. 저 높은 곳에서 강을 향해 내려 온 눈송이가 자기 얼굴을 강물에 비추어보며 겁도 없이, 때로 두 눈을 부릅뜨고, 또는 눈을 살포시 감고, 강물로 사라지는 모습은 마치 두려움을 모르는 사랑 같다.


사랑에 어디 두려움이 있으랴.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무엇이 두려우랴. 그 사랑이 비록 끝이 보인다 해도, 그런 사랑이라 해도 사람들은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우면 그것이 사랑 일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소복소복 하얗게 쌓이는 사랑도 사랑일터이지만 금세 사라지는 순간의 사랑도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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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길에 들어 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며 겁이 없다. 겁 없는 세상,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겁도 없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은 아름답다. 겁도 없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강물로 사라지는 저 수 많은 눈송이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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