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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반상의 튀는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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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한국바둑 랭킹 1위인 이세돌 九단. 그가 기자회견을 통해서 “앞으로 1년6개월간 기전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선 프로기사가 오랜 기간 공식대국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자체가 바둑 팬들에게는 충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바둑이 중국의 추격에 막 뒷덜미를 잡혀가는 시점에 터진 문제이기에 한국 바둑사에는 매우 큰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 최고수의 입에서 나온 한국기원과의 갈등사유이죠. 시상식에 자주 불참했던 것과, 대국 이후 바둑판에 사인을 잘 안 해준 사실과, 기보의 저작권에 관해 서명을 거부했던 일과, 국내기전을 외면하고 중국리그에 출전했던 행위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기원이 위 4가지 사안을 괘씸하게 생각해 징계를 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당분간 바둑대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초강경 카드를 던진 셈입니다. 한국기원이 이세돌 九단의 돌출행동을 개성으로 봐 줄 것인가 탈선으로 해석할 것인가 여하에 따라 바둑계는 원치 않게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입니다.



알고 보면 이세돌이란 존재는 행동에서뿐만 아니라 기풍에서도 이창호와 대비되는 바둑을 두어 왔기에, 형식을 싫어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요즘 신세대 층의 바둑 팬들이 많은 편입니다. 팬들은 이 九단의 바둑기풍은 물론 자유분방한 행위까지도 좋아했던 것이지요.



“프로기사가 바둑만 잘 두면 되지 누구 눈치를 보고 행사에 신경 쓸 필요가 뭐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징계를 하려는 한국기원의 입장이 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세돌 9단이 제기한 문제는 한국기원이 당연한 듯이 관행에 젖어서 해온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개혁해야 할 문제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기사들과의 실전을 통해 내 바둑을 향상시키는 것이 한국 바둑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고, 13억 인구의 중국 국민들에게 한국 바둑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기전에 참가한다고 했던 이세돌 9단의 말이 이제 한국바둑에서 더 배울 게 없다는 뜻으로도 들리지 않습니까?



한 때 프로야구선수들이 선수협의회를 구성하고 협회에 반발했던 사례들이나, 각종 아마추어 스포츠단체에서 수시로 터져 나오는 조직과 선수들과의 불협화음들도 실은 뿌리가 유사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결정이 나든지 간에 “이 기회에 한번 기를 꺾어놓아야겠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면 한국바둑은 상당한 팬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수우미양가’란 성적평가에서 보듯이 그 가능성 하나만 보고 꼴찌에게도 ‘가’(可)라는 평점을 줄 수 있었던 학교 교육의 포용과 아량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이세돌 최고수의 자유분방한 기질이 다치지 않고, 한국기원도 좀 더 싱싱한 조직으로 개편되고 개혁할 수 있다면 서로가 살길을 찾은 것입니다.



“앞으로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에 더욱 신경 쓰도록 노력하겠다”는 이 말, 어디서 많이 들어왔던 말 같지만 실은 이세돌 9단이 회견 마지막에 한 말입니다. 바둑의 세계화를 선도해야할 입장에서, 내분으로 기력을 소진하다가 경제력에 이어 바둑판까지 중국에 추월당하면 형세를 다시 뒤집기가 결코 만만하지 않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입니다.



문득 무하마드 알리라는 전설적인 헤비급 권투영웅이 떠오릅니다. 그는 백악관에 초청받아 대통령 앞에서도 오히려 자신을 만난 걸 영광으로 생각하라는 조크를 던질 정도였습니다. 명확한 종교적 입장과 정치적 신념을 가진 흑인이었기에 핍박을 받고 구설수에 올랐지만 챔피언 복서로서 할 말을 다하고도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사회가 자기분야에서 세계 제1인자가 된 20대 젊은이들에게 좀 더 많은 걸 요구하는 반면 자유로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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