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사업하기가 남보다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을 뿐 가진 게 한 푼 없다면 사업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2002년 미국 인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기업인 1600만 명 가운데 무려 55%가 가족의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은행 대출로 사업을 시작한 이는 11.4%, 신용카드로 사업을 출범시킨 사람은 8.8%다.
나머지 대다수는 정부 대출이나 외부 투자자의 돈으로 사업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돈 한 푼 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끝없는 열정으로 희망을 일궈낸 이른바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들이 존경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맨 땅에서 맨 손으로 시작한 이들 억만장자가 있어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pos="L";$title="";$txt="(사진=블룸버그뉴스)";$size="114,180,0";$no="2009062116293973122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조지 소로스(78)=재산 110억 달러.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나치를 피해 잉글랜드로 이주했다. 소로스는 런던정경대학(LSE) 재학 중 철도 역에서 짐을 운반하며 웨이터로도 일했다.
소로스가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1956년의 일이다. 그는 미국에서 몇몇 투자업체를 전전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안홀드 앤 S 블라이흐뢰더다. 소로스는 안홀드에서 부사장까지 승진했다.
이후 소로스는 몇몇 역외 투자펀드를 운용한 뒤 짐 로저스와 손잡고 '소로스 펀드' 창업에 나섰다. 운용자금 1200만 달러로 출범한 소로스 펀드는 현재 수백억 달러를 주무르는 퀀텀 펀드의 모태가 됐다.
$pos="L";$title="";$txt="(사진=블룸버그뉴스)";$size="93,144,0";$no="2009062116293973122_2.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커크 커코리언(91)=재산 50억 달러.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커코리언은 1930년대 후반 당시 유명했던 여성 파일럿 판초 반스에게 비행 교육이 끝나 돌아올 때까지 소떼를 돌봐주겠다고 제안했다.
2차대전 중에는 캐나다에서 잉글랜드까지 군수품을 수송하는 일도 맡았다. 당시 영국 공군 수송기는 그만한 장거리나 북대서양의 날씨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한 달 1000달러의 임금으로 그처럼 위험한 일을 맡는다는 것은 모험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 전시에 돈 모은 커코리언은 1947년 6만 달러로 '트랜스 인터내셔널 항공'을 매입했다. 그는 이후 트랜스 인터내셔널 항공을 1억400만 달러에 트랜스아메리카로 넘겼다. 여기서 거머쥔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했다.
현재 커코리언이 운영 중인 투자업체 트래신다는 카지노업체 MGM 미라주의 지분 39%를 보유하고 있다.
$pos="L";$title="";$txt="(사진=블룸버그뉴스)";$size="131,180,0";$no="2009062116293973122_3.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오프라 윈프리(55)=재산 27억 달러. 미국 미시시피주의 철부지 10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윈프리는 가난과 육체적 학대로 고통 받으며 자랐다. 학창 시절 웅변과 미모 대회를 휩쓴 그는 테네시 주립 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졸업 후 테네시주 내슈빌 소재 WLAC-TV에서 흑인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 뉴스 앵커가 됐다. 29세에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한 방송국에서 아침 TV 쇼 'AM 시카고'를 진행했다. 'AM 시카고'는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로 이름이 바뀐다.
32세에 백만장자가 된 윈프리는 1998년 하포 스튜디오스를 출범시키며 다른 영화, TV 프로그램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닥터 필', '레이첼 레이' 쇼다. 케이블 TV 옥시전과 출판사 O, 오프라 매거진, O 앳홈도 경영하고 있다.
$pos="L";$title="";$txt="(사진=블룸버그뉴스)";$size="95,180,0";$no="2009062116293973122_4.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조앤 롤링(43)=재산 10억 달러. 한때 영국 정부의 생활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싱글맘'이었으나 '해리 포터' 집필 이후 마술처럼 인생 역전에 성공했다. 롤링은 젖먹이 딸이 잠든 사이 '해리 포터'를 써 나아갔다.
출판사 12곳을 찾아갔으나 모조리 퇴짜 맞았다. 이윽고 런던의 소규모 출판사인 블룸즈버리에서 선인세로 2400달러를 제시했다. 출판사에서 다른 일거리도 소개시켜줬으나 롤링은 이를 거절하고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이듬해 '해리 포터' 미국 판권이 10만5000달러에 팔렸다. 이후 지금까지 '해리 포터'는 세계 전역에서 4억 부 정도 팔렸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작가로 유일하게 오른 인물이 롤링이다.
$pos="L";$title="";$txt="(사진=블룸버그뉴스)";$size="106,160,0";$no="2009062116293973122_5.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샌디 웨일(76)=재산 8억 달러. 1933년 폴란드 출신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땡전 한 푼이라도 저축하는 습관을 길렀다. 코넬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한 웨일은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에 들어가 밤이면 주식중개인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1960년 세 친구와 함께 20만 달러로 카터 벌라인드 앤 웨일이라는 주식 중개업체를 창업했다.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여러 업체를 인수하면서 만든 이들의 트래블러스 그룹은 메릴 린치에 이은 업계 2위로 부상했다.
1998년 트래블러스는 시티코프와 합병해 지금의 시티그룹이 됐다.
$pos="L";$title="";$txt="(사진=블룸버그뉴스)";$size="120,180,0";$no="2009062116293973122_6.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제프리 카첸버그(58)=1950년생인 카첸버그는 15세 때인 1965년 존 린제이의 뉴욕 시장 출마 당시 정치 조직책으로 일찌감치 재능을 발휘했다. 이후 파라마운트 사장인 배리 딜러의 오른 팔로 활약하며 마이클 아이스너 최고경영자(CEO)와도 알게 됐다.
1984년 아이스너 CEO가 디즈니로 자리를 옮기면서 카첸버그도 함께 움직였다. 카첸버그는 디즈니에서 '인어 공주',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을 제작했다.
1994년 아이스너와 결별한 카첸버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녹음 감독 데이비드 게펜과 함께 드림웍스 SKG를 설립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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