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처리법 위헌 결정 파문
사고 당시 중상해 불구 상태 호전돼 법정에선 경상 가능성
의사도 곤혹..사고 직후 판단으로 형사 처벌 부담 "후유증 올 수도"
운수업체 반발 여전..법무부 "별도의 입법 할 수 없다" 강경
법무부 역시 뾰족한 대안 없어.."재판통해 가릴 수밖에"
사실상 명확한 중상해 기준 마련은 불가능 지적
헌법재판소가 종합보험 가입 운전자의 경우 교통사고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기소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지 약 3주가 됐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상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고 있어 일선 검사들은 수사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의사 역시 진단에 혼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법무부와 대검찰청에서 마련중인 중상해 기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준 마련은 사실상 힘들다는 지적이다.
◆검사도 고민에 빠뜨린 헌재 결정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일선 검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운전자가 교통사를 낸 당시 피해자가 중상해를 입었다고 판단해 기소했지만 법정에서는 '중상해'로 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사고 당시에는 피해자가 실제로 중상해를 입었더라도 법정에 서기까지는 일정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어 재판을 받을 때는 증상이 호전, 중상해 상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반대로 사고 당시에는 큰 이상이 없어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지만 교통사고의 중상해는 후유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사고를 재조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발생할 수 있다.
한 일선 검사는 "사고 당시 중상해로 판단, 기소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중상해가 아닌 걸로 결론날 경우 결국 검사는 중상해를 입지 않은 피해자를 기소한 꼴이 된다"며 "이 경우 검사에게는 인사상 벌점이 부과되기 때문에 수사상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현재 대검찰청에서 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딱' 부러지는 기준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의사들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삼성서울병원 한 교수는 "교통사고 피해자가 중상인지 경상인지에 대한 판단을 사고 직후 내려야 하지만 교통사고의 경우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어 영구장애가 발생할 지 여부를 한 순간에 결론짓기는 어렵다"며 "더욱이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곤혹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운수업체 반발 여전..법무부는 '강경'
택시ㆍ트럭 등 차량 운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운수업체에서는 전과자 양성은 물론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법무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실제로 전국버스연합회 관계자는 "교통사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교통사고 전과자가 대폭 늘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화물연대 관계자는 "화물차량은 살짝 부딪히기만 해도 대형사고다. 기존 12가지 중과실 외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을 때도 사망사고로 인해 구속되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많았다"며 "생계를 위해 화물차량을 운전하는 것도 힘겨운데 전과자까지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말했다.
또 형사처벌 대상 확대시 피해자가 이를 빌미로 좀 더 많은 배상을 받아내려 가해자를 압박하는 등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운전자가 누구냐에 따라 입법을 달리하는 법안은 없다"고 일축했다.
◆뾰족한 수 없는 '법무부'
그렇다고 법무부가 묘안을 가진 것도 아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상해의 경우 누가 봐도 명백하게 구분된다. 일선에서 혼란 없이 잘 사고를 처리할 수 있도록 대검에서 실무검토중"이라면서도 "한계 선상에 있는 것은 재판을 통해 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 마련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헌재 책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중상해'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지 않은 상황에서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는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릴 당시 중상해를 정의한 법 조항은 '생명의 위험이 발생했거나 난치의 질병에 이르게 한 경우'라고만 적시된 형법 258조 뿐이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에 따라 해당 법률이 사실상 위헌이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무효화에 따르는 법의 공백과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을 개정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결정인 '헌법불합치' 결정도 고려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승국 기자 ink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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