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⑬'치료하라' 풀어줬더니…병원 절반 실적 無
■ 4장. 변곡점에 선 마약수사
기소돼도 47% 법원에서 집행유예 선고
검찰 단계에서도 구약식·기소유예 20%
치료 목적인데 지정병원 절반은 실적 0
절반에 가까운 마약류 사범은 초범이거나 치료 의사가 있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하지만 정작 이들 중독자가 치료받아야 할 치료보호기관 절반은 치료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한 처벌도, 확실한 치료·재활도 아닌 '허술한 관용'으로 세 명 중 한 명은 다시 마약에 손을 댔다.
절반은 집행유예, '치료받으라' 풀어준 法·檢
21일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은 2023년 2만7611명을 기록한 뒤 해마다 2만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마약류 사범이 벌금·집행유예 등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마약류 사범 1심 재판 결과를 보면, 2024년 벌금·집행유예가 전체 6315건 중 2963건(46.9%)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전체 3365건 중 벌금·집행유예는 1352건(40.2%)이었다. 10년 만에 6.7%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절반 가까운 마약류 사범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고 풀려났다. 2024년 집행유예 기간별 분포를 보면 3년 미만이 53.2%로 과반을 차지했고 5년 미만 38.9%, 5년 이상 5.0%, 2년 미만 2.9% 순이었다.
검찰의 심판도 무뎌졌다. 2014년 구공판(검사가 사건을 법원에 넘겨 정식 형사재판을 열어 달라고 청구한 상태) 처분은 1만222건 중 3949건(38.6%)이었고, 구약식(검사가 서류 심리만으로 벌금형 등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약식기소)·기소유예는 1804건(17.7%)이었다. 2024년 들어서는 2만5822건 중 구공판 8928건(34.6%)으로 재판에 회부되는 비중마저 줄었다. 반면 구약식·기소유예는 5207건(20.1%)으로 늘었다.
기소유예 처분이 늘어난 이면에는 '검사의 자의적 판단'이라는 고질적 문제가 있다. 기소유예에 요구되는 객관적 수치나 표준화된 기준은 공개돼 있지 않다. 오로지 검사 개인의 재량으로 판단한다. 초범이나 수사에 협조한 마약류 사범의 형량 거래에 기소유예가 남용될 수 있는 것이다.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실적·효과에는 '물음표'
법조계에선 기소유예를 결정할 때 '치료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사후 검증하는 체계는 부실하다. 마약류 사범 재범률은 2021년 36.6%, 2022년 35.0%, 2023년 32.8%, 2024년 34.5% 등으로 줄지 않고 있다. 세 명 중 한 명은 재범을 한 셈이다.
검찰의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은 치료, 보호관찰소 선도, 교육 이수, 사법-치료-재활 연계모델 등의 조건을 단다. 조건부 처분 실적은 2021년 1403건, 2022년 1553건, 2023년 1540건, 2024년 1453건 등이다. 마약 범죄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했고 기소유예 처분도 늘었지만, 조건부 기소유예 건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이 가운데 치료 조건부만 보면, 오히려 2021년 22건 이후 해마다 줄었다. 2024년에는 고작 11건에 그쳤다. 사법-치료-재활 연계 실적도 2024년 도입 첫해 148건에 그쳤다.
양형 기준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마약류 범죄의 양형은 투약·단순소지, 매매·알선, 수출입·제조, 대량범 등에 의해 결정된다. 투약 기준으로 보면 환각물질의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1년에 불과하다. 대마·향정(라·마 목)은 8개월~1년6개월, 향정(나·다 목)은 1년~2년6개월, 마약·향정(가 목)은 1~4년에 처한다.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거나 자발적 치료 의사, 심신미약, 수사 협조 등은 모두 감경 요소다.
향정에서 가 목은 양귀비, 나 목은 아편, 다 목은 미처리 코카 잎을 가리킨다. 라 목에는 코카인, 헤로인, 모르핀, 옥시코돈 등 주요 마약류가 포함된다. 마 목은 펜타닐 등이 해당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무조건 강하게 처벌하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은 전세계에서 입증된 결론이지만, 세밀하고 구체적인 사후 조치 없이 기소유예를 내주는 건 경각심을 낮출 수 있다"며 "최근 세태를 반영해 마약류 사범에 대한 양형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 놀리는' 치료보호기관 지정 병원들
사법부의 처벌 강화보다 중독자 치료와 재활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시아경제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을 통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확보한 '치료보호기관 치료보호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32곳이 마약중독자 치료보호시설로 지정됐다.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4곳은 치료 실적이 전무했다. ▲인천참사랑병원 758명 ▲서울 은평병원 217명 ▲국립부곡병원 193명 ▲대동병원 138명 ▲국립정신건강센터 87명 등 5곳에 1393명(84.5%)이 집중됐다.
치료보호기관 32곳에 마련된 병상은 336개다. 상위 5곳에 확보된 병상은 177개(52.7%)에 불과하다. 인천참사랑병원의 경우 병상이 50개로, 758명을 치료했다. 반면, 다음으로 병상(32개)이 많은 신세계병원의 치료 실적은 7명에 그쳤다.
경기의료원 의정부병원, 광주시립정신병원, 국립춘천병원, 청주의료원, 양산병원 등 5곳은 5년 내내 치료보호 실적이 없었다. 양산병원을 제외하면 모두 국립·공공 의료원이다. 관할 지방자치단체나 보건 당국이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강제 운영했어야 하는데 방치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수익성'과 '인력난'의 악순환을 꼽았다. 그는 "마약 중독자는 일반 정신질환자보다 관리가 훨씬 까다로운데, 수가 체계나 정부가 내주는 지원금을 고려하면 사명감이 아닌 다음에야 이 업무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며 "민간 병원은 일반 환자를 받는 게 더 이득이고 지방 병원들은 예산과 전문의가 부족하니 수용을 거부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범 중 치료보호로 연결되는 비율은 턱없이 적은 데다 오히려 제도가 치료보호를 막는 걸림돌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복지부와 식약처가 치료·재활 정책을 놓고 예산을 따로 투자하고 있는 것부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인천참사랑병원, 전국 치료 '절반' 감당
인천참사랑병원은 국내에서 최후의 보루로 꼽힌다. 그렇지만 이곳도 다른 병원과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병원 천영훈 원장은 "마약 환자는 조현병·알코올 중독 환자보다 훨씬 힘들고 위험한데 수가는 똑같다"며 "부담은 큰데 보상은 없으니 민간에서 맡지 않으려고 하고 결국 전문가도 안 생긴다"고 했다.
정부가 병원을 지정해도 수가 체계 등이 뒤따라주지 못하니 전문의가 육성되지 못한다. 이는 병원의 전문성 결여로 이어진다. 전문 프로그램과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는 환자들이 찾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천 원장은 "지정만 해놓고 치료 역량은 못 따라가는 상황"이라며 "지원금을 마냥 내려보낼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마약류 환자 수가 자체를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치료비 지원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천 원장은 "애초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다'는 말을 못 하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재산 상태도 보지 않고 무조건 치료비를 국가가 다 내주는 구조로 돼 있어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며 "재벌집 아들도 무료로 치료받는 셈인데, 소득별 차등 지급 논의도 지금은 중단됐다"고 설명했다.
환자를 치료하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이 병원에 전가된다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천 원장은 "외출·외박을 나갔다가 성경책, 심지어는 항문이나 질 안에 약을 숨겨오는데 교도소가 아니니 통제할 방법이 없다"며 "병원에서 마약이 유통되면 법적 책임은 병원이 지고, 경찰에 먼저 신고해도 '마약 치료 병원에서 마약을 한다'는 외부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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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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