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투명…폐렴에 병세 악화
"나는 사업가보다 모험가"
트럼프도 "내 친구" 애도

세계 최초의 24시간 전문 뉴스 채널인 미국 CNN을 세운 테드 터너(사진)가 6일(현지시간) 87세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일생은 생전 고인의 평가처럼 '사업가'라기보다 '모험가'에 가까웠다.

테드 터너 CNN 창립자. AP연합뉴스

테드 터너 CNN 창립자.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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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방송은 6일(현지시간) 터너가 이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그는 2018년 치매를 앓기 시작했으며 지난해 폐렴으로 인해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터너는 오하이오주(州)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대형 옥외광고 회사 '터너 아웃도어 애드버타이징'을 물려받으며 미디어 업계에 발을 디뎠다. 부친이 술과 약물 오남용, 우울증 등으로 갑작스럽게 별세했기에 터너를 향한 세상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터너는 보란듯 라디오 방송국을 사들였고 1970년에는 애틀랜타 텔레비전방송국인 채널 17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초창기에는 오래된 시트콤과 영화를 방영했으며, 이후 야구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 중계권을 사들여 시청자를 모았다. 그는 이때의 성공을 기반으로 1976년 채널17을 위성 방송으로 만들면서 전국 케이블 가입자에게 서비스를 시작했다. 케이블 TV 가운데서는 최초의 슈퍼스테이션(지역 방송국이 위성을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는 것) 사례로 꼽힌다.


1980년 6월1일에는 CNN을 선보였다. 터너는 당시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뉴스가 이미 끝나있었다"며 "나처럼 저녁 TV 뉴스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24시간 뉴스채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사가 처음부터 수익을 냈던 것은 아니다. CNN은 설립 후 첫 2년간은 매달 200만달러의 손해를 봤다. 시청자는 200만명에 불과했고, 백악관 출입기자단에 들어가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와 소송전을 불사하기도 했다.


24시간 보도 채널의 힘은 1990년 걸프전쟁에서 주목받았다. 최초로 전쟁이 생중계됐는데, CNN에서만 이를 볼 수 있었다. '아버지 부시'라고 불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미국 중앙정보국(CIA)보다 CNN에서 더 많이 배운다"고 평가한 것은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받아쓰기식 보도가 아닌 특파원의 생중계는 미국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당겼다.


1996년 터너는 타임 워너에 75억달러(약 11조원)를 받고 네트워크 사업을 매각했다. 이후에도 타임 워너의 부회장을 지내면서 케이블 뉴스 사업을 총괄했지만 2003년 사임했고, 최근까지 자선사업가로 활동했다.


개인적인 면모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는 자주 소리를 지르고 입이 걸어 "남부의 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으며, 세 차례의 결혼과 이혼, 잦은 내연관계 등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극우 공화당원'을 자처했지만,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친구였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을 옹호했다. 사업 계약을 할 때는 계약서를 끝까지 읽지 않았고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과거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사업가라기보다는 모험가"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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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터너의 별세 소식에 "방송 역사의 거장이자 내 친구였고 필요할 때마다 곁에 있어 줬다"며 애도했다. 주인이 바뀐 후 CNN이 망가져 버렸다는 비난도 잊지 않았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기자가 작성하고 AI가 부분 보조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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