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은 성공, 논증은 실패

[기자수첩] 예송논쟁 같은 檢조작기소 국조특위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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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합이 중요해. 그게 복불복이야."


여당 소속 A국회의원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상대당 간사와의 '호흡'이 좌우한다는 얘기였다. 고성과 막말, 모욕과 호통이 오가는 자리에도 신사협정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발언이 길어지면 간사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흐름을 끊고, 정회 뒤에는 바깥에서 더 크게 충돌하는 장면을 연출한 뒤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온다. 그러면 모든 의원들이 할당된 시간을 지키고 풍부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A의원은 "짜고 하긴 어렵지만, 결국 합이 맞아야 돌아간다"고 했다.

28일 종합청문회를 끝으로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국정조사'는 이런 '합'에는 성공한 연출을 보여줬다. 청문회에 참석한 전직 고검장은 "카메라 사각지대에는 쇼츠·릴스·틱톡용 장면을 만들기 위해 보좌진들이 포진해 있었다"고 했다. 실제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국조 스타'가 된 의원들이 적지 않다. "윤석열 닮았어! 윤석열" 같은 자극적 발언도 화제가 됐다.


문제는 내용이다. 이번 청문회가 핵심 근거로 삼은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의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에게 (대북송금을) 보고했다"는 진술은 이미 법정에서 신빙성이 흔들리며 증거능력이 제한된 상태였다. 북한에 전달된 700만달러 관련 영수증, 쌍방울 임직원들의 외화 반출 인정 등 다른 물적 증거가 대법원 판단의 결정적 토대가 됐다. 방용철 전 부회장까지 나서 '리호남을 만난 적 있다'고 했음에도 청문회에서는 해당 진술이 회유된 것이라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검찰의 표적 수사나 과잉기소는 당연히 통제돼야 한다. 김혜경 여사의 '10만원 법인카드 유용 기소' 사건처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기소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개별 사건들 모두를 검찰 기소 전반의 정당성 부정으로 확장하는 것은 비약이다. 한 헌법학자는 이를 두고 "합리적 토론과 논증이 붕괴된 문과의 실패를 보는 것 같았다"고 했고, 한 법조인은 "연어회를 먹였나 안먹였나하는 공방은 조선시대 예송논쟁과 뭐가 다르냐"고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청문회가 사법의 작동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형사재판은 단일 진술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진술, 물증, 정황, 반대신문이 결합된 구조다. 특히 공모 사건일수록 단편적 해석은 성립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번 국정조사는 대장동, 위례신도시, 김용 사건, 통계조작, 서해 피살, 부산저축은행 등 이질적인 사안들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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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청문회는 진실을 밝히는 절차라기보다 각자 지지층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 당파주의자들의 팬덤 만들기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정치는 정견발표 때나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청문회를 왜 세비를 들여 계속 해야 하나. 이제는 고민해봐야 한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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