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다르게, 흙과 함께한 60년"...도예가 신상호 회고전(종합)
'신상호:무한변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서 개최
내년 3월29일까지
작품 90여점 아카이브 70여점 공개
"한 가지를 평생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성격이 그러지 못한다. 항상 반항하고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행위 속에서 가르침을 얻으며 스스로 변화한 게 흙과 같이한 60년 생활이다."
26일 오전 경기도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한국 현대 도예의 선구자 신상호는 위와 같이 말했다. 신상호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사회와 미술의 변화에 호응하며 흙을 매체로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온, 한국 도예를 이끌어 온 대표 도예 작가다. 이번 전시에선 1960년대 경기도 이천에서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전통 동예의 길에 들어선 후 시대의 변화와 내면의 예술적 탐구심에 따라 예술적 경계를 확장해 온 다채로운 흙의 예술 세계를 선보인다. 전통 도자에서 조각, 회화, 건축 등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 90여점, 아카이브 70여점을 전시 제목 '무한변주'에 담아 소개한다.
1부 '흙, 물질에서 서사로'에서는 1960~1990년대 신상호의 전통 도자 세계를 조명한다. 신상호는 1965년 홍익대학교 공예학부에 입학한 그해, 경기도 이천의 가마를 인수해 전통 도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1965) 이후 일본에서 한국 전통 도자기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며 전통 도자가 국가 수출품으로 주목받던 시기, 이천의 다른 도자 장인들과 함께 일본 전시에 참여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전통을 맹목적으로 좇으려 하기보다 자유로운 재해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국내 최초로 일본에서 가스 가마를 도입해 정교한 디자인의 생활 식기를 제작해 화가들과의 협업으로 '전통의 현대화'를 도모한 것도 그런 일환이다. 당시 전통을 저버렸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당시 나무를 때우는 전통 가마의 성공률이 5~10%에 불과한 반면, 가스 가마의 성공률은 95%에 가까웠다"며 "일각에선 이단아처럼 왜 전통을 버렸냐고 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가스 가마를 사용한다. 당시 과학을 들여온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2부 '도조의 시대'에서는 1986년부터 선보인 신상호의 도자 조각, 도조(陶彫)를 선보인다. 1984년 미국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학 교환교수 시절,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도자를 경험한 신상호는 조각과 회화적 요소가 결합된 예술의 조형성을 추구하며 '꿈' 연작(1990~1995)을 발표했다. 신상호는 한국 도예의 국제화를 위해 88 서울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자신의 작업장인 부곡도방에서 '국제도예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했다.
3부 '불의 회화'에서는 2001년 이후 선보인 신상호의 건축 도자의 실험성을 600여 장의 도자 타일과 건축 아카이브를 통해 조명한다. 그는 도자와 건축의 결합을 실험하며 도자 타일로 대형 외벽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서울 센트럴시티 고속버스터미널의 '밀레니엄 타이드'를 시작으로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금호아시아나 사옥(현 콘코디언 빌딩), 서초 삼성타운 등의 외벽에 '구운 그림' 도자 타일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특히 금호아시아나 사옥의 외벽 타일 장식은 심미성 커 숱한 건축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본래 더 높이 만들려 했는데 당시 (건축사들이) 경험이 없어서 너무 높게는 못하고 4층으로 타협했다"며 "이후 그런 류의 후배들 작품이 나오질 않고 있는데 생존만을 고민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부 '사물과의 대화'에서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타문화의 옛 물건의 수집과 이를 통한 창작활동을 소개한다. 컬렉터로도 잘 알려진 작가의 수집품을 작업장에 놓인 모습 그대로 전시장에 재현해 작가의 영감이 발현되는 내밀한 순간과 창작의 출발점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5부 '흙의 끝, 흙의 시작'에서는 2017년부터 흙판을 금속 패널에 부착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히는 도자 회화를 조명한다. '흙으로 그린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제작한 '생명수'(2017)와 '묵시록' 연작(2017~)은 흙의 유기적 패턴과 중첩된 색의 층위가 한데 어우러져 도자의 물질적 깊이를 평면 회화에 담아냈다.
연계프로그램으로는 관람객들이 직접 상상의 동물을 도자 조각으로 창작해보는 활동이 마련됐다. 미적 대상이자 조형 재료로서의 흙의 촉감, 상상력, 유희, 불에 의한 변환 과정을 밀도 있게 경험하도록 기획됐다.
신상호는 이번 전시를 통해 도예에 대한 대중 인식이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그는 "도예가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흙은 고갈되지 않는, 대단히 좋은 자원이다. 어렵고 힘들다는 건 어쩌면 그 반대의 기회일 수 있다"며 "삭막한 세상에서 흙이 좋은 교육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도전정신을 조금만 가지면, 흙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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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0대 나이에 이천 장작 가마 운영을 시작해 국내 최초로 가스 가마를 도입하고, 강남 센트럴시티 건물 외벽 프로젝트를 맡는 등 입지적 인물의 60여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라며 "한국 현대 도자 예술의 확장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애정 어린 관심을 당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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