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위기 시민의 힘으로 극복
선출직은 권한을 대행하는 것 뿐
모든 권력으로 국민으로부터 나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을 선고한 지난 4월 4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일대에서 탄핵에 찬성한 시민들이 헌재의 파면 선고에 환호하는 모습. 연합뉴스=김성민 기자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계엄군을 막아섰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회의장에 진입하면서 계엄은 150분 만에 해제됐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복수의 군 지휘관 증언에 따르면 그는 제2, 제3의 계엄도 불사하겠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군은 그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결국 그는 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모두가 기억하는 그 날의 장면이다.
아마도 몇 년, 아니 평생 잊지 못할 그 날의 혼란 속에서 형법학자 한인섭 교수의 페이스북 글은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안겨줬다. 7개 항목으로 구성된 그 글은 계엄이 왜 성립될 수 없는지, 그것이 왜 내란에 해당하는지, 그 명령에 동조할 경우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를 짧지만 명확하게 담아냈다. 그런 그가 '계엄과 내란을 넘어: 국민이 써 내려간 헌법 이야기'를 펴냈다. 책에는 우리가 모두 함께 겪었던 계엄과 해제, 탄핵과 헌재 판결의 과정이 실려 있다. 국민이 헌법학자가 돼야 했던 그 시기에 마주한 헌법 조문들의 해설과 그 배경도 담겨 있다.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우리는 엘리트 지배주의자들의 민낯을 목격했다. 윤 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잇따른 실책 끝에 여당 역사상 최악의 총선 참패를 겪었다. 민심은 윤 정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반성은커녕 부정선거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민심을 부정했다. 급기야 계엄을 선포해 국회를 마비시키고, 일방적 통치를 시도했다. 그가 추진하려 했던 비상입법기구가 그 증거다. 그는 민심을 거스르며 독재를 시도했다.
이 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에 의해 좌절됐다. 계엄이 선포되자 시민들은 즉시 국회로 몰려갔고, 군인들 앞을 가로막았다. 광주의 기억이 독재의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냈다. 탄핵 국면의 갈림길마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에도 반영됐다. "한편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막아낸 것은 주권자인 국민임을 명시했다.
대법원의 유력 야권 주자 재판 파기환송 또한 엘리트주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대법원은 절차적으로 무리하면서도 이례적인 속도로 전원합의체 판결을 했다. 물론 이는 불법은 아니다. 이례적이라는 사실이 곧 문제라는 의미도 아니다. 전원합의체 판결을 9일 만에 내리지 말라는 법적 제한도 없다. 만약 국민이 이 판결을 납득했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한 대법원장 탄핵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역풍은 없었다. 오히려 민심은 대법원을 질타했다. 국민은 대법원의 판결을 '대통령 후보를 국민이 아닌 법원이 정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엘리트가 국민 위에 서려는 시도로 비쳤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헌법에 권력을 가진 주체는 오직 하나다. 바로 국민이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는 권한을 가질 뿐이며, 권한은 권력을 대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6월 3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한다. 그 또한 권력자는 국민임을, 대리자는 결코 권력자 위에 설 수 없다는 헌법의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엄과 내란을 넘어 | 한인섭 지음 | 아마존의 나비 | 336쪽 | 1만9500원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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