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아닌 공급자 중심 제도
문턱 낮춘 실효적 운용이 과제
지인이 서울 강남권에 있는 한 재건축 아파트를 경매로 낙찰받았다면서 이달 초 연락해왔다. 관리처분인가를 마쳤고 조합원 자격도 넘겨받을 수 있는 물건이었는데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를 어떤 방식으로 적용받을지, 조합원 자격을 넘겨받으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할지 알 길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구청의 담당자는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며 조합에 확인하라고 넘겼다고 한다. 조합에서는 권한이 없다며 발을 뺐다. 고민하던 지인은 결국 포기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을 서울 강남권에 광범위하게 지정한 후 일선 현장의 혼선이 끊이지 않자 정부에서도 서울시, 구청과 협의해 업무처리 지침을 내놨다. 재지정 후 한 달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기존 주택 처분 시한을 언제로 할지, 처분 방식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구청마다 제각각이라 형평성 논란도 불거진 터였다.
복잡한 경우를 따져 지침을 촘촘히 짰지만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든 건 아니다. 기존 주택을 팔지 않고 임대로 활용해도 된다고 정부가 내린 결론을 두고서도 설왕설래했다. 기존 주택을 팔기로 하고 아직 팔지 않은 이는 어떻게 적용할지, 처분시한을 넘겨 납부했던 이행강제금은 어떻게 될지 등 잡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를 단순히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여전히 부동산은 서민이나 중산층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거래비용도 큼직하다. 적지 않은 돈이 오가는 제도임에도 이를 허투루 운용하는 듯 비치니 영 미덥지 못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정책에 대한 신뢰도 한편에는 또 금이 갔다.
우리 사회 현장에서 일어날 법한 모든 경우를 하나하나 따져 빼곡히 규정을 만들면 달라질까. 요즘 나오는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최근 접한 한 수도권 민간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는 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작은 글씨로 빼곡히 채웠다.
청약제도를 규정하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0년대 선보인 이래 수차례 굵직한 변화를 거쳤다. 2000년대 들어 현 제도의 골격을 가졌는데 근래 들어서도 연간 서너 차례 이상 개정작업을 거쳤다.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부동산원은 2022년 청약제도에 관한 설명을 두툼한 책('주택청약의 모든 것') 형태로 처음 발간한 후 매해 개정판을 내놓고 있다.
주택 공급이 부동산 정책의 한 축을 맡는 만큼 시대 흐름이나 안팎의 요구에 따라 바뀌는 건 십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지나치게 잦은 변경, 복잡한 얼개는 과연 이 제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의심이 들게 한다. 제도가 복잡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공무원의 입김이 세진다는 얘기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수요자를 우선하는 게 아니라 공급하는 입장에서 쥐락펴락하는 모양새다.
좋은 정책이나 제도를 만드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만큼 당초 취지를 살려 올바른 방향으로 운용하는 것도 뒷받침돼야 한다.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 테다. 그럼에도 제도나 정책의 지향점이 결국 우리 사회 혹은 구성원 개개인의 삶을 더 나은 쪽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공적 집행자나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에게도 문턱을 낮춰야 할 당위성이 있다.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 사회는 그런 쪽을 지향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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