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지휘관들은 장성으로 진급하면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삼정검(三精劍)’이라는 검을 받는다. 군인의 꿈인 ‘별’을 달았다는 일종의 상징이다. 소장이나 중장·대장 등으로 진급하면 대통령은 이 삼정검에 직접 직위와 이름, 날짜를 수놓은 자주색 수치를 손잡이 부분에 달아준다. 나라를 위한 충성심과 애국심, 그리고 장군으로서의 책무를 강조하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덕목도 있다. 책임감이다. 진급할수록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개입된 군 장성들도 삼정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삼정검의 의미를 제대로 새긴 장성은 없어 보인다. 책임감은 없고 억울함만 있다. 억울함만 호소하다 보니 자가당착에 빠져 앞뒤가 맞지 않는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했던 전 특전사령관과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국회 국방위 소속 한 야당 의원의 유튜브 인터뷰에 출연해 당시 ‘비상계엄’이라는 말은 당시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TV 담화를 보고 알았고 김용현 전 장관의 지시에만 따랐다고 했다. 군 지휘관으로서의 판단은 없었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의 제2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을 놓고는 "그런 지시가 있더라도 거부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억울함만 내세우다 보니 스스로 기밀까지 해제했다. 김현태 특전사 제707 특수임무단 전 단장은 "국회에 출석해 제가 아는 모든 진실을 말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을 듯해 여기 섰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전략부대의 기밀인 얼굴과 이름을 공개했다. 국방부 훈령도 어겼다. 지난해 8월 해병대 고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제기했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군 당국의 사전 승인 없이 TV 생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견책’ 처분이란 징계를 받았다.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장성들은 눈물까지 동원했다. 이상현 특수전사령부 전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끝내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장성의 눈물에도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악어의 눈물이라 불렀다. 허탈한 장면도 있다. 한 공군 장성은 긴급 현안 질의가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 군화를 벗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모습이 생중계로 전달됐다.
우리 군은 그동안 복지와 급여 인상을 말할 때면 미군과 비교했다. 강군으로 가기 위해서는 미군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린 미군과 다르다. 책임감 있는 지도자도, 지휘관도 없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백악관 집무실에 ‘The buck stops here’라는 문구가 적힌 참나무로 만든 팻말을 놓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21년 8월 백악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 결정을 옹호하면서, 자신이 그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반면, 우리 군 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은 사법절차에 저항하고 수사 기관들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군 장성들은 아직도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장병과 국민은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 10·26사태 이후 45년 만에 군을 또다시 폭거의 도구로 전락시키고도 "나는 몰랐다", "명령 이행을 최대한 안 하려고 했다"는 등 면피성 해명에 급급한 군 장성들을 보면서 분노와 실망감이 더 커지고 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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