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⑶예보, 2020년 페어펀드 도입 연구보고서
작년 페어펀드 용역 발주…하반기 결과 보고
재원은 '과징금, 벌금 등 민사제재금'
운용 주체는 금융당국·법원·예보 등 의견차
'동의의결제' 도입해 미국식으로 운영 제안도
전문가들은 불공정거래 피해자 구제 방안으로 미국의 '페어펀드(공정기금)'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페어펀드는 미국 연방증권법 위반행위 사건 조사결과에 따라 환수한 부당이득(disgorgement) 또는 민사제재금(civil penalty) 등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대신 투자 피해자에게 배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펀드이다. 우리나라도 2020년 국회에서 '한국판 페어펀드' 도입을 논의한 바 있지만, 운영주체와 재원 등에 대한 이견으로 결실은 보지 못했다. 아시아경제 특별취재팀이 '한국판 페어펀드 도입'을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재원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일치했고, 운용 주체와 관련해 의견 차이가 존재했다. 이와 별개로 공정거래법상 '동의의결제' 구조로 페어펀드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예보 "운영주체 금융당국·법원·예보 "…정순섭 교수 "과징금 특별계정에 편성 방안 고민"
예금보험공사는 2020년 '미국의 페어펀드 운영 현황 및 시사점'을 주제로 한국판 페어펀드 운영재원, 운영주체, 보상대상 등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운영재원은 금융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형사 벌금, 추징금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각종 제재금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분석했다. 당시에는 3대 불공정거래(부정거래·시세조종·미공개정보이용) 행위에 대한 과징금 제도가 없었고, 형사처벌만 가능했다. 때문에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규정한 불완전판매 행위에 대한 징벌적 과징금이 주요 재원으로 꼽혔다.
운영주체는 금융당국이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과징금과 벌금 부과 주체가 금융위이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운영주체로 언급했다. 페어펀드 재원에 과징금뿐만 아니라 형사 벌금 등이 포함되면 법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또 금융회사가 파산할 경우 채권자의 지위 확보, 파산재산 분배 등에 있어 법원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점도 고려됐다. 미국에서도 증권업 감독기구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원이 각각 운영하고 있다. 다만 이해충돌 문제가 존재하므로 영국처럼 통합예금보험기구(FSCS)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예보는 지난해 12월18일 한국판 페어펀드 도입을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용역 결과는 올해 하반기에 보고될 예정이다.
다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과징금, 벌금 등이 국고에 귀속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페어펀드 기금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가가 확보한 재원을 투자자 피해 보전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 국고로 귀속된 과징금을 특별계정에 편성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불공정거래 관련 제도를 만드는 최종적인 목적은 '피해자 구제'라며 "예보처럼 기금을 만들고 대상을 불공정거래 피해자로 정의한 뒤 피해 사실을 확인하면 먼저 피해금액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엄세용 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과징금 재원 삼아 금융당국이 운영해야"
미국의 페어펀드 제도와 관련해 전문가로 꼽히는 엄세용 법무법인 린 전문위원도 재원으로 과징금, 벌금 등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엄세용 법무법인 린 전문위원은 "페어펀드 도입 시 재원으로 사용되는 과징금, 벌금은 국고 귀속이 원칙이므로 국고가 아닌 페어펀드 계정에 귀속된다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보와 달리 운영주체로 금융당국을 제시했다. 미국의 페어펀드는 금융투자업에서의 불공정거래, 공시위반, 브로커들의 규정 위반에 따른 민사제재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예금과 금융투자상품의 성격이 다르고,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금융회사의 성격도 다르다. 예보는 예금(안전자산) 보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이다. 금융투자상품과 관련된 불공정거래 피해를 예보가 보상할 법적 권한이 있냐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의 페어펀드를 한국에 도입한다면 불공정거래 행위를 감독 제재하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피해 대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행정상 업무 효율성을 고려하면 금융당국이 최선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가 불공정거래 행위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과징금 액수를 결정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엄 전문위원은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 위반 사실을 확인한 후 피해자를 확정해야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며 "증권사와 한국거래소, 금감원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요청해야 하는데 금융위 외의 기관이 담당하기엔 행정상 비효율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빠르면 1년, 늦어도 2~3년 안에 불공정거래 피해 보상이 완료된다"며 "예보를 중심으로 분배 협업 체계를 만들어 페어펀드 제도를 만들 수 있지만 신속한 피해자 구제라는 측면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승재 변호사 "금융 분야에도 '동의의결제' 도입해야"
미국의 페어펀드 모델을 최대한 그대로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미국 제도는 '행정상 화해'라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도입한 '동의의결제'와 유사하다. 동의의결제란 법 위반 사항에 대해 과징금을 물리지 않고 불공정거래 가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시정 방안을 제시·이행해 사건을 끝내는 제도다.
최승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변호사(세종대 법학부 교수)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부과한 과징금, 벌금 등을 페어펀드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는 "국고에 귀속되는 민사제재금은 곧 세금"이라며 "이를 불공정거래 피해자 보상에 사용한다면 '투자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공정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공정위 '동의의결제' 제도 등 관련 분야의 실무와 이론에 있어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동의의결제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하게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공정거래 가해자의 범죄 경중에 따라 피해 보상액을 10~100% 협상할 수 있다. 피해 구제를 위한 돈을 충분히 내도록 한 뒤 양형에서 감해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는 미국의 페어펀드에 가장 근접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 현재 금융위가 '동의의결제'를 도입하지 않았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이다. 올해부터 과징금 부과를 시행하는 금융위 입장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추가로 도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동의의결제 도입과 관련해 '돈으로 처벌을 면한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최 변호사는 "지금도 재판 중에 합의금을 공탁하면 감형해준다"면서 이런 시각에 대해 일축했다.
최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 구제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불공정거래 사건이 터지면 피해자들은 금감원 분쟁조정을 통해 해결하고 싶어하는데 이 역시 피해자 구제에 장점이 있다"며 "그러나 법원에서 집단소송을 통해 금융회사들이 낸 돈을 통해 피해보상에 나서는 것이 선진화된 방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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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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