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장기화가 바꾼 풍경
'월 용돈 5만엔' 50만원→43만원으로
일본 관광 한국인 코로나 이전 수준 넘어

엔저 현상에 일본 관광에 나선 한국인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선 반면 한국에 있는 일본인 유학생들과 재일 한국인 직장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원·엔 환율은 지난달 기준 100엔당 800원대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3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의 엔저 현상이다.


엔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엔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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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일본인 대학생들은 지출 줄이기에 나섰다. 지난 학기부터 숙명여대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텐시 요시오카씨(21·여)는 "부모님께 매달 5만엔의 용돈을 받는다. 용돈은 같은데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크게 줄었다"며 "돈을 아끼기 위해 점심도 어학당 근처에 있는 집에 가서 간단히 먹고 다시 어학당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요시오카씨가 한국에 처음 왔던 지난 1학기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00원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이번 학기 엔저 현상이 나타나며 환율은 850원대까지 떨어졌다. 50만원이었던 용돈이 43만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사키모토 아키라(25·남)씨도 식비 줄이기에 나섰다. 아키라씨는 "보통 밥은 일반 식당에서 먹고 카페에 갔다. 학생식당은 한 달에 3~4번 정도 갔는데 엔화 가치가 떨어지며 요샌 일주일에 4번 이상은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게 됐고, 공부도 무조건 도서관에서 한다"며 "논문을 준비하느라 바빠 아르바이트를 할 여력이 없어 식비를 줄이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국내 일본인 유학생은 지난 10월 기준 5067명으로 전년 동기(5883명) 대비 13.8%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 완화 등에 힘입어 같은 기간 국내 체류 전체 유학생은 19만8063명에서 22만5372명으로 증가한 것과 비교된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한국인들도 곤욕을 겪고 있다. 도쿄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모씨(31·남)는 "사실상 실수령액이 10%가량 감소한 것과 같다"며 "생활비 지출을 줄이고 매달 월급의 일부를 투자하던 것도 중단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김모씨(29·남)도 "가장 부담되는 부분은 한국을 오가는 항공료"라며 "인플레이션에 엔저 현상까지 겹쳐 항공료가 체감상 이전의 두배 이상 오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근무하다 최근 한국으로 이직한 이모씨(33·남)는 통장에 남아있는 엔화를 환전하지 않고 있다. 이씨는 "엔화가 약세라 지금 환전하면 손해라는 생각에 그대로 두고 있다"며 "일본에 놀러 갈 때 쓰거나 투자라 생각하고 엔화 가치가 오르면 환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발 항공편 게시판에 일본행 항공편이 안내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발 항공편 게시판에 일본행 항공편이 안내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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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엔저 효과로 방일 한국인 관광객은 급증하고 있다. 올해 일본을 찾은 우리나라 관광객 수는 팬데믹 이전 규모를 넘어섰다. 8일 일본관광국(JTNO)의 올해 1~10월 방일 관광객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총 552만명으로 같은 기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513만명)을 앞질렀다. 지난달 일본 후쿠오카를 다녀왔다는 직장인 신모씨(27·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첫 여행인데 면세점과 일본에서 저렴하게 쇼핑한 것까지 생각하면 오히려 남는 장사란 생각까지 들었다"며 "엔화가 다시 비싸지기 전에 한 번 더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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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유학생들도 엔저 현상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 7일 공개한 '2023년도 국외 고등교육기관 한국인 유학생 현황' 자료를 보면, 올해 일본에 유학 중인 한국인은 1만3701명이다. 일본 대학원에 다니는 김모씨(31·남)는 "한 학기 등록금이 28만엔이다. 예전엔 원화로 280만원 정도였는데, 이번 학기는 실질적으로 240만원 수준으로 낮아졌다"며 "집에서 받는 용돈도 사실상 증가한 꼴이라 생활에 굉장히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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