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에는 구슬이 하나 들어 있지만, 그 사실이 맞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뚜껑을 열고 들여다볼 때만 구슬을 보여주지 않는 요술 상자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사실일까 싶지만 아주 작은 입자의 세계에선 분명히 확인된다. 이런 현상을 이용해 계산하는 컴퓨터를 ‘양자컴퓨터’라고 부른다.
양자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최소단위는 ‘큐비트’다. 0도 될 수 있고 1도 될 수 있는 요술 상자의 숫자를 말한다. 예를 들어 큐비트가 10개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2의 10승. 즉 1024개 경우의 수를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다. 제곱으로 계산하니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100개가 되면 1,267,650,600,228,229,401,496,703,205,376. 말로 채 읽기도 어려운 크기가 된다. 양자컴퓨터를 개발자들의 최대 숙제는 여러 개의 큐비트를 동시에 제어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 미국 IBM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오스프리’는 이미 433큐비트의 성능을 확보했다.
양자컴퓨터는 작동원리 자체가 다르다. 일반적인 상황에선 보통 컴퓨터보다 성능이 더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컴퓨터로 막대한 시간이 걸렸던 소인수분해, 생화학 반응 모사, 암호 및 보안 등 과학기술 분야 연구에는 압도적 성능을 보여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의 성능을 혁신적으로 높일 수 있어 최근 그 관심이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AI시대에 이 말은 어떤 의미일까. 앞으로 양자 기술이 없는 나라는 타국에 종속적으로 끌려가야만 한다는 뜻도 된다. 양자 기술은 이미 미래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최근 우리 정부에서 ‘양자 연구원(가칭)’ 설립 검토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견 고무적인 일이지만 건물보다 중요한 건 연구의 방향성이다. 미국, 중국, 유럽 등 기술 선도국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권 경쟁과 기술 블록화 추세를 냉정히 판단하고, 이를 이용하면서 우리만의 미래 기술을 확보해나가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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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민 과학기술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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