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의료계 내부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당장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이 3일부터 동시다발적인 ‘연가투쟁’ 등 부분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간호사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보건의료인 단체가 줄줄이 파업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 정부도 의료 현장의 혼란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반면 간호사단체 역시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강력히 대응하겠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한 대학병원 간호사에게 분위기를 물었더니 “(여론이 민감하기 때문에) 수술이 미뤄지거나 진료가 취소되는 등의 의료대란은 없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의사협회 파업이 시작되면 간호사들만 더 죽어나게(바빠지게) 생겼다”고 말을 보탰다. 또 다른 병동 간호사는 “이번 간호법안엔 당장 실현 가능한 처우 개선은 빠지고 되레 논란거리가 포함됐다”며 “간호사 한 명으로서 (법안을) 지지하긴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잠 한숨 더 자고 초과근무 안 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토로했다.
직접적인 의료서비스 수혜자인 국민들은 간호법에 대해 잘 몰라서 이쪽 편도 저쪽 편도 들지 못한다. 지난 두어 달간 ‘앞으로는 간호사가 단독으로 병원을 열 수 있게 된다더라’ ‘간호사가 임상병리사·방사선사·보건의료정보관리사·응급구조사 등의 업무 영역을 침해하게 된다’ 등의 간호법 반대 입장부터 심지어는 ‘간호법이 의료민영화를 앞당겨 국민 노후를 더 불안하게 할 것’이라는 선동까지 난무했던 터라 법의 실제 내용이 무엇인지,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제대로 알 길이 없다.
간호법은 17대 국회였던 2005년부터 꾸준히 논의되고 발의돼 왔지만 매번 무산됐다. 21대 국회가 들어선 후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보건·의료인력의 처우개선 문제가 중요시되고 고령화에 대응한 의료기관 밖 돌봄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논의가 재개됐다. 지난해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여당과 야당 의원의 발의안을 모은 간호법 제정안을 도출했지만 몇 달씩 법제사법위원회 심사에 묶여 있었고, 올해 2월에야 국회 본회의에 직상정돼 결국 지난달 말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호법의 세부 실행력을 보완하고 각종 이해관계를 다듬는 작업은 빠졌다. 결국 간호사들의 숙원이자 그 필요성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었는데도, 여러 민생 법안 가운데 정치적 쟁점화가 쉽다는 이유로 여권과 야권의 정쟁 도구로 사용되면서 그 취지가 퇴색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어느 쪽이 더 옳고 그르냐를 따지기도 전에 국민들의 눈엔 이번 사태가 의료계 직역 간 쪽수 대결, 의사단체와 간호사단체의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돌봐야 할 환자가 많아 근무 여건이 고되고, 그래서 국가면허를 갖고도 의료기관을 떠난 간호사가 절반이나 되는 현실에서 간호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선행돼야만 의료서비스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 건 자명한 일이다. 이는 또 간호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 간호조무사를 포함한 모든 의료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의료인단체가 나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권익을 요구하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정치적 입김에 휘둘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한 행동을 선택해 안 될 일이다.
/조인경 산업부문 조사팀 차장 ikjo@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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