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감찰자료 활용 예고에 직협 반발
"경찰노비문서가 전산으로 탄생"
익명 게시판엔 제도 옹호 목소리도

경찰이 경찰서장 등 현장 관리자들의 직무를 스스로 점검토록 하는 '자가진단 제도'를 내달 중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관리자들이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직무분위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향후 감사나 감찰 자료로 활용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현장 경찰관을 감시와 통제로 옥죄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경찰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경찰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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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직무관리 진단 스스로… 감찰자료로 활용

경찰청은 최근 업무보고를 통해 내달 중 '경찰서 현장 관리자 직무관리 자가진단 운영' 시행을 예고했다. 경찰서장과 경찰서 과·계·팀장이 점검·관리해야 할 항목을 주기적으로 설문 응답 방식으로 자가진단토록 한다는 게 이 제도의 주요 골자다. 자가진단표 설문 항목으로는 ▲112신고 처리 ▲수사 사건처리 ▲주요상황 보고 및 비상대비 ▲주요지시 이행 ▲교육·훈련 ▲하위 관리자 직무관리 점검 등이 포함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은 경찰서장 자가진단표의 경우는 전산화해 각 시도경찰청과 함께 관리할 방침이다. 각 경찰서 과장이나 계·팀장 등 여타 관리자는 수기로 자가진단표를 작성해 매일 상급자가 점검토록 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이 자가진단표를 향후 각종 감사 자료, 필요시에는 감찰·인사 참고자료로 활용한다는 청사진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여태껏 실무자들에게는 무척 엄격하고 관리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자가진단 제도는 경찰서장과 과·계·팀장 등 관리자들이 관리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한편 본래 지휘·감독 체계를 통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시스템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협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진 감찰카드 부활" 반발

경찰 노조 격인 전국경찰직장협의회에서는 이 같은 내용의 자가진단 제도에 대해 우려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록영 직협 사무총장은 내부망에 글을 올려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감시하는 감시카드처럼 감찰카드가 부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백 총장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감시하고 옥죄려고 만들었던 것이 '감시카드'"라며 "해방 이후 악습이 이어졌으나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1999년 과거의 잘못은 모두 묻어버리자며 감찰카드를 모두 불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것(자가진단 제도)은 20여년 전 감찰카드가 부활해 경찰노비문서가 새로이 전산으로 탄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감찰카드는 현장경찰관의 사생활과 일거수일투족을 자료화해 감찰기능에서 정보수집을 하고 향후 인사자료로 활용했던 것"이라며 "직무관리 자가진단도 현장경찰관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도 했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장 /윤동주 기자 doso7@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장 /윤동주 기자 dos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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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조직 운영 위해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

경찰청은 내부망에서 이같이 비난 여론이 불거지자 주관부서장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이영철 경찰청 감사담당관(총경)은 내부망 글을 통해 "'감찰카드'의 부활이라는 지적은 자가진단 제도의 도입 취지와 많이 다르다"며 "업무내용을 체크리스트 방식으로 점검하는 것은 전 세계 경찰기관에서 보편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해명했다.


이 총경은 또 "자가진단 내용이 각종 감사자료로 활용되고 유사시에는 감찰조사 자료나 인사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내용 때문에 오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도 "그것(자가진단 제도)이 오용되거나 과도하게 남용되는 게 문제지, 관리 시스템 자체는 조직 운영을 위해 너무도 당연하고 지극히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경은 그러면서 "기본과 원칙 중심의 직무관리 시스템을 정립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인 만큼 대승적으로 동참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며 "합리적인 지적과 건의는 적극 경청하고 수렴해 보완하고 개선하겠다"고 덧붙였다.


일선 경찰 의견 분분… 직협 비난 목소리도

경찰청 해명에도 불만 목소리는 여전하다. 한 경찰관은 댓글을 통해 "왜 자꾸 이상한 거 만들어서 직원들의 걱정을 만드느냐"며 "제발 하는 일이나 좀 잘하자"고 했다. 또 다른 경찰관은 "굳이 감사에서 이 제도를 주관하고 관리하다니 과거 우리 스스로 그토록 잔인하게 만들었던 '감찰 만능주의'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며 "충분히 사전 아내를 통해 공감대가 만들어진 이후 시행해도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이 같은 비난 여론을 경계하는 내부 목소리도 존재한다. 경찰관들이 이용하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청 게시판에는 "경찰서장이 체계적으로 과장이나 계장 등 지역경찰을 잘 관리하라는 것 아니냐. 당연한 업무지시인데 얼마나 더 놀고 싶으면 감찰을 들먹이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돈 받고 직장생활하면서 아무런 통제는 받지 않겠다는 발상이 통하는 우리조직이 안타깝다"며 "노는 걸 놔두는 게 정의롭고 인간적인 상사라고 하는 거냐"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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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협을 저격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경찰관은 "총무국장이 글을 올리니 직협들 부들거리면서 댓글을 단다"며 "감사담당관이 팩트를 얘기해도 그냥 빽빽거린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경찰관은 "직협은 스스로 무덤만 판다"며 "말이 되는 소릴하라"라고 지적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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