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스승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모래집을 짓는 아이처럼 보였다. 매번 실패할 수 있기에 이 놀이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아이. 막막한 울분이 아니라 가벼운 흥분에 휩싸인 채로.
"갈매기 조나단은 먹이를 위해서 날지 않고 궁극의 비행을 위해 날았잖아요. 선생님은 혹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이 실패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닌지요?"
"모르겠어. 나는 평생 도전이 필요한 인간이었네. 계속 쓰고 또 쓰고 다시 썼네.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다시 하는 거라네. 니체도 다르지 않아. '운명이여 오너라.' 위인들이 거창해 보여도 그렇지가 않아. 지면 또 한 번 부르짖을 뿐이지. 스스로 쓸 말이 없어서 남의 얘기나 옮겨봐. 그건 서생이지. 글자 쓰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이 아닌 거야. 사람들은 글씨 쓰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을 혼동하는데, 글씨 쓰는 사람은 서경(書耕)이네. 베끼는 사람. 보다시피 나는 지금 많이 아프네.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져.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남은 이들을 위해 각혈하듯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무슨 말씀이든지요."
"그게 희망이 될지 선물이 될지 나는 모르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거니까."
"남아 있는 세대를 위해서요."
상처 입은 복서가 몸을 일으키듯, 말이 몸을 일으켜 다시 초원 위에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암요. '자아'를 통과한 글만이 만인의 심장을 울리니까요. 선생님은 지난번 저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내가 받은 선물이었다'라고 하셨어요. 일단 그것부터 시작할까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지음, 열림원, 1만65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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