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하루천자]'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하루천자]'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AD
원본보기 아이콘
편집자주아시아경제는 '하루만보 하루천자' 뉴스레터 독자를 위해 매일 천자 필사 콘텐츠를 제공한다. 필사 콘텐츠는 일별, 월별로 테마에 맞춰 동서양 고전, 한국문학, 명칼럼, 명연설 등에서 엄선해 전달된다.'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선생은 자신이 새로 사귄 '죽음'이란 벗을 소개하며 사랑과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어 남아 있는 세대에게 삶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전한다. 작가 김지수 씨가 선생이 작고하기 1년 전쯤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최근 특별판으로 다시 출간했다. 아래는 교보문고의 한지수 MD(시·에세이 담당)가 추천하는 이 책의 인상 깊은 구절이다. 글자수 1019자.
[하루천자]'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원본보기 아이콘

글을 쓴다는 것은 앞에 쓴 글에 대한 공허와 실패를 딛고 매번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스승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모래집을 짓는 아이처럼 보였다. 매번 실패할 수 있기에 이 놀이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아이. 막막한 울분이 아니라 가벼운 흥분에 휩싸인 채로.


"갈매기 조나단은 먹이를 위해서 날지 않고 궁극의 비행을 위해 날았잖아요. 선생님은 혹 계속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이 실패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닌지요?"

"모르겠어. 나는 평생 도전이 필요한 인간이었네. 계속 쓰고 또 쓰고 다시 썼네.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 다시 하는 거라네. 니체도 다르지 않아. '운명이여 오너라.' 위인들이 거창해 보여도 그렇지가 않아. 지면 또 한 번 부르짖을 뿐이지. 스스로 쓸 말이 없어서 남의 얘기나 옮겨봐. 그건 서생이지. 글자 쓰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이 아닌 거야. 사람들은 글씨 쓰는 사람과 글 쓰는 사람을 혼동하는데, 글씨 쓰는 사람은 서경(書耕)이네. 베끼는 사람. 보다시피 나는 지금 많이 아프네. 말할 수 있는 시간은 갈수록 짧아져. 그래서 내가 이제부터 남은 이들을 위해 각혈하듯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무슨 말씀이든지요."


"그게 희망이 될지 선물이 될지 나는 모르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거니까."

"남아 있는 세대를 위해서요."


상처 입은 복서가 몸을 일으키듯, 말이 몸을 일으켜 다시 초원 위에서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야. 오히려 에고이스트지. 에고이스트가 아니면 글을 못 써.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어쩌면 독재자하고 비슷해. 지독하게 에고를 견지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만인의 글이 되기 때문이라네. 남을 위해 에고이스트로 사는 거지."


"암요. '자아'를 통과한 글만이 만인의 심장을 울리니까요. 선생님은 지난번 저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내가 받은 선물이었다'라고 하셨어요. 일단 그것부터 시작할까요?"


[하루천자]'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원본보기 아이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지음, 열림원, 1만6500원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강릉 해안도로에 정체모를 빨간색 외제차…"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하이브 막내딸’ 아일릿, K팝 최초 데뷔곡 빌보드 핫 100 진입

    #국내이슈

  • "푸바오 잘 지내요" 영상 또 공개…공식 데뷔 빨라지나 대학 나온 미모의 26세 女 "돼지 키우며 월 114만원 벌지만 행복" '세상에 없는' 미모 뽑는다…세계 최초로 열리는 AI 미인대회

    #해외이슈

  • [포토] '그날의 기억' [이미지 다이어리] 그곳에 목련이 필 줄 알았다. [포토] 황사 극심, 뿌연 도심

    #포토PICK

  • 매끈한 뒷태로 600㎞ 달린다…쿠페형 폴스타4 6월 출시 마지막 V10 내연기관 람보르기니…'우라칸STJ' 출시 게걸음 주행하고 제자리 도는 車, 국내 첫선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비흡연 세대 법'으로 들끓는 영국 사회 [뉴스속 용어]'법사위원장'이 뭐길래…여야 쟁탈전 개막 [뉴스속 용어]韓 출산율 쇼크 부른 ‘차일드 페널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