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파키스탄 '기준금리 20%' 亞 최고…빚더미 신흥국 디폴트 비상
지난달 1%P 이어 이달 3%P 인상
인플레 잡으려 고강도 긴축 나서
中 일대일로 참여·코로나·우크라 전쟁 삼중고
美 금리인상 겹치며 부채감당 난항
신흥국 총부채 98조 달러…연쇄 디폴트 우려 해결책 찾아야
선진국의 고강도 긴축의 칼날이 아시아를 헤집고 있다. 파키스탄의 경우 기준금리가 20%를 기록하면서 아시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달에만 3%를 올렸다. 물가 폭등, 화폐 가치 폭락 등 국가 부도 위기의 전조 증상이 모두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고육지책이다. 파키스탄을 포함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연쇄 채무불이행(도미노 디폴트)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일각에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최악의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신흥국 부채 위기 해소를 위해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파키스탄 기준금리 20%…아시아 최고
파키스탄 중앙은행은 지난 2일 기준금리를 종전 17%에서 20%로 3%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금리를 1%포인트 올린 후 한 달 만에 초강도 긴축에 나선 것이다. 파키스탄 중앙은행으로서는 1996년 10월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의 금리 인상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최고다. 파키스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 인상 배경과 관련해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고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강력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파키스탄 물가와 통화가치를 살펴보면 이 같은 금리인상을 무리라고 보긴 어렵다. 파키스탄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무려 31.5% 폭등했다. 1974년 이후 최고치다. 화폐 가치도 급락세다. 파키스탄 루피화 가치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하기 전날인 1일 미국 달러 대비 6% 넘게 하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이 늦어지자 외국인들이 파키스탄 통화를 투매하면서 외환시장이 발작을 일으켰다.
인구수 2억3000만 명의 세계 5위 인구 대국인 파키스탄 경제가 국가 부도 위기 직전까지 내몰린 것에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다. 우선 중국이 주도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참여하면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집행했고 그 과정에서 대외 채무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파키스탄의 대외 부채 중 약 30%가 중국에 진 빚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삼중고로 가뜩이나 취약한 재무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더해, 지난해 발생한 대홍수도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미국이 네 차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 인상)에 나서는 등 고강도 긴축에 나서면서 파키스탄의 통화 가치는 절하되고, 채무 상환 부담이 확대되면서 디폴트 위기가 심화됐다. 다행히 중국이 최근 13억 달러 규모의 채무 상환 연장을 허용하면서 파키스탄은 가까스로 디폴트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끈 데 불과해 언제든 위기가 재발할 위험이 남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파키스탄 국가 신용 등급을 ‘Caa3’로 두 단계 강등했다. 무디스는 "유동성과 대외 포지션이 점점 취약해지면서 디폴트 위험이 상당히 증가했다"며 "취약한 정부와 사회적 위험 고조로 대규모 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려는 파키스탄의 노력이 훼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신흥국 부채 98조 달러…도미노 디폴트 우려
신흥국 중에는 파키스탄과 같은 문제에 봉착한 국가들이 여럿 발견된다. IMF에 따르면 부채 위기에 처한 국가는 최빈국의 60%로, 2015년 30%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 실제로 스리랑카와 가나가 이미 대외 채무에 대한 디폴트를 선언했고, 이집트는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디폴트 위기 직전까지 도달했다.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중국의 일대일로 참여로 대외 부채가 증가한 국가들이 적지 않고 여기에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전쟁, 금리인상까지 겹치며 신흥국의 부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불어나고 있다.
국제금융연구소(IIF)에 따르면 2022년 말 신흥국의 총 부채 규모는 98조 달러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2% 늘어난 수준인데,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무려 28.6% 급증했다. 신흥국 총부채 96조 달러 가운데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는 7조 달러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미 금리인상→달러화 강세→신흥국 통화 가치 절하→해외 투자금 유출→신흥국 통화 추가 절하→대외 부채 상환 부담 가중'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신흥국의 경우 정부 수입 대비 이자지출 비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피치에 따르면 주요 신흥국 20개국의 정부 수입 대비 이자지출 비율은 2016~2020년 평균 7.3%에서 2022년 8.3%로 올랐다. 올해도 8.8%로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수입 대비 이자지출 비율이 올해 1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국가도 적지 않다. 인도가 27%로 가장 높은 수준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18.8%), 브라질(17%), 인도네시아(15%), 콜롬비아(14.5%), 멕시코(13.8%), 말레이시아(12%)도 이자 상환 부담이 클 것으로 점쳐졌다.
국제금융센터는 "신흥국의 부채가 누적 증가하는 가운데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재정건전성 악화, 채무상환 부담 가중, 신용위험 확대 등 신흥국 부채 리스크가 부각될 우려가 있다"며 "아직까지는 채무불이행 위기가 저소득국 집중돼 있지만 일부 중소득 신흥국에서도 부채 리스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제2의 외환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아시아 신흥국은 유연한 환율제도 도입, 외화유동성 관리 강화, 부채구조 및 금융시스템 개선 등으로 경제 펀더멘틀이 과거 위기 때와 비교해 전반적으로 양호하다"며 "아시아 신흥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재연 우려는 다소 과도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다만 강달러 등이 지속될 경우 국가별로 상이한 내재 취약성에 노출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100조 날리게 생겼는데…"삼성 파업은 역대급 특수...
중국의 적극적인 부채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은 중국이 2012년 말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일대일로를 추진하며 개도국에 자금을 쏟아붓고 부채 문제를 악화시켰다며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