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한국은 미·일·대만과 동맹관계가 될 수 있을까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는 한국에서 반도체·전자 분야를 다루는 기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취재원 중 하나다. TSMC를 설립한 모리스 창 창업자는 물론 주요 경영진들은 한국 언론 인터뷰라고 하면 손사래부터 친다. 대만 TSMC 현장 취재도 한국 기자들에게는 좀처럼 성사가 어려운 '넘사벽' 과제다. 비단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전자와 TSMC 간 교류는 보기 드물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스마트폰 경쟁관계에 있는 애플의 팀쿡 최고경영자(CEO)와는 만나도 TSMC의 모리스 창 창업자를 비롯한 경영진을 만나는 일은 없다. 파운드리 경쟁 관계에 있는 삼성전자와 TSMC는 서로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TSMC가 단순 경쟁관계를 넘어 서로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은 국가 경제의 사활이 걸린 반도체, 그 중에서도 첨단 기술력이 집약돼 미래 성장성이 높은 파운드리 시장을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TSMC 입장에서는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끌고가고 있는 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까지 외치는 게 달가울리 없다.
대만 기업들은 2007년 메모리반도체 시장 치킨싸움 당시 삼성전자에 밀려 상당수가 폐업했다. 지금은 난야만 '톱5'안에 간신히 이름을 올리고 있을 뿐 점유율 측면에서는 70%를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경쟁이 안된다. 한국과 비슷하게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가진 대만은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한다. 대만 시가총액 '톱10' 기업 가운데 TSMC, 폭스콘, 미디어텍 등 절반이 전자·반도체 업종일 정도로 반도체 시장에 국가경제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 대만에 대규모 공장을 갖추고 일자리를 책임졌던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이 삼성전자 때문에 무너진 경험은 대만 반도체 업계에 지울 수 없는 상처다.
대만 기업들은 직접적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 보다 일본을 반도체 파트너로 더 신뢰한다. TSMC는 지난해 일본 기업 소니와 손잡고 구마모토현에 첫번째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2024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추가로 1조엔(약 9조7000억원)을 투자해 일본 구마모토현에 두 번째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로부터 보조금도 받는다. 반면 한일 간 관계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하면서 협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 이제 막 꼬인 실타래를 풀기 시작하는 걸음마 단계다. 양국 정부는 수출규제에 관한 한일 간 현안 사항에 대해 2019년 7월 이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양자 협의를 신속히 해나가기로 했다.
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협의체를 의미하는 '칩4 동맹'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보조금을 준다는 명목으로 한국의 기술 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광범위한 조건들을 내세우고 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워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 정부에 재무건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수익성 지표와 현금흐름 등 내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기업이 예상을 넘어서는 이익을 거두면 미 정부는 보조금의 75%까지 환수할 계획이다. 보조금 수령 기업은 10년간 중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에 제한을 받게된다. 우리 정부는 기업이 문제시하는 부분을 우선순위에 두고 미국과 협의할 예정이지만 칩4 동맹을 주도한 미국이 속내를 드러내면서 업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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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맺는 동맹은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는 신뢰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동맹에 뜻을 모은 국가와 기업들이 협력할 때 이익이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만드는데 힘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주도로 끌려가다시피 추진된 칩4 동맹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계산도 필요하다.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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