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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법 이민자였다니"…美 공무원 '출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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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 국경서 불법 이주자 추방 업무 담당
알고 보니 父가 출생증명서 위조…멕시코 태생

미국 국경에서 근무하면서 오랫동안 불법 이주자 추방 업무를 맡았던 전직 공무원이 알고 보니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불법 이주자였다는 사실이 50년만에 발각됐다. 그는 추방 위기를 간신히 면했다.


미 CNN 방송은 26일(현지시간) 텍사스주에 사는 라울 로드리게스(54)의 사연을 보도했다. 그는 미 관세국경보호국(CBP)에서 거의 20년간 일하며 불법 이민자 수천명을 미국 땅에서 쫓아냈다. 로드리게스는 CBP와 그 전신인 이민귀화국에서 일하기 전 미 해군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그는 조국인 미국을 위해 일한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꼈고,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에 한 치의 의심조차 없었다.

미 공무원으로 일하다 자신도 몰랐던 출생증명서 위조로 하루아침에 불법 이민자 신세가 된 라울 로드리게스(54).[사진출처=연합뉴스]

미 공무원으로 일하다 자신도 몰랐던 출생증명서 위조로 하루아침에 불법 이민자 신세가 된 라울 로드리게스(54).[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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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드리게스의 정체성 위기는 그의 나이 49세이던 2018년 4월 찾아왔다. 연방 수사관들은 로드리게스에게 그가 멕시코에서 태어났다는 출생 증명서를 내밀었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오래도록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로드리게스가 미국이 아니라 멕시코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미국 출생증명서는 가짜라는 것이었다.

직장서는 '해고'…지인들도 등 돌려

로드리게스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추방하는 사람'에서 '추방돼야 할 사람'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조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그에게는 휴가 처분이 내려졌지만 결국 이듬해인 2019년 해고됐다. CBP는 로드리게스에게 그가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더는 CBP에서 일할 수 없다는 통지를 전했다. 그 이후 로드리게스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해군 복무 시절 머리를 다쳐 매달 받고 있는 장애 수당이 그의 유일한 수입이다.

한 때 해외에서 복무하기도 했던 그이지만 이제는 추방 위험에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사는 처지가 됐다. 로드리게스의 부인 아니타는 "그는 미국을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이제는 집 뒷마당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한탄했다.


로드리게스의 고통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CBP에서 만난 동료는 물론 친구들도 연락을 끊었으며, 한때 저녁 식사 초대까지 하며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마저 그를 외면했다. 로드리게스는 "사람들은 나를 '불법'이라고 생각해 나를 버렸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로드리게스에게 "당신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등을 돌린 대가"라는 등 가시 돋힌 말을 퍼부었다.

추방 처분 취소 승인 받고 기다리는 중

외톨이가 된 로드리게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사람은 일면식도 없던 봉사자였다. 다이앤 베가는 텍사스주 엘파소의 '애국자 송환 단체'에서 해외로 강제 추방된 퇴역군인들을 다시 입국시킬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다 로드리게스의 사연을 들었다. 베가는 "미국에서 태어난 줄로만 알았고, 미국에서 자랐으며, 미국 군대와 정부에서 일한 사람이 한순간에 '당신은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며 로드리게스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베가와 그의 단체는 텍사스주 의원들에게 로드리게스의 사연에 대해 알리는 한편 그가 미 재향군인부(VA)에 등록해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희망적인 소식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로드리게스는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상황을 소명했고, 재판부는 그의 추방 취소를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방 처분 취소는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첫 번째 조치다. 다만 이와 같은 경우에 대한 영주권 발급은 연간 4000건으로 제한돼 있어 로드리게스가 영주권을 손에 쥐기까지는 수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현재 로드리게스는 매일 이민 법원 웹사이트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는 "나는 이 나라를 위해 오랫동안 봉사했다"며 "나는 스스로 뭔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나라에 머물 기회 정도는…"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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