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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전 옥중 살신성인 의지…'기다림 끝' 부활한 안중근의 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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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물 복원’ 리움미술관 보존연구팀
28일 보존처리 성과 공개 전시
110년만에 돌아온 유물 보존 작업 ‘기다림의 연속’

"글씨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런 느낌일까?"

보존처리를 마친 안중근 의사 유묵 '지사인인 살신성인'.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보존처리를 마친 안중근 의사 유묵 '지사인인 살신성인'.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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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에서 마주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새하얀 종이에 방금 쓰여진 듯 형형한 자태를 드러냈다.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 높은 뜻을 가진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논어 위령공편의 문구를 직접 쓴 안 의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그 문장을 증명해 보였다. 한 획 한 획 벼린 안 의사의 글씨가 생생히 돌아오기까지에는 1년여의 보존처리 작업이 수반됐다. 보존 작업을 이끈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수석은 “1년 내내 안중근 의사의 글씨와 사진들을 집중해서 보다 보니 나중엔 보존처리 대상을 넘어 피붙이가 된 것처럼 그분 삶의 궤적과 사료들을 찾아보게 됐다”며 웃었다.


1년간의 보존처리를 마친 안 의사의 옥중 유묵 ‘지사인인 살신성인(志士仁人 殺身成仁)’,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 2점과 가족 사진첩이 28일부터 리움미술관 전시 '초월-과거와 현재, 국경을 넘어 만나다'를 통해 대중에 공개된다. 보존 작업은 삼성문화재단과 안중근의사기념관의 협약을 통해 지난해 1월부터 진행됐다. 이 중 ‘지사인인 살신성인’ 유묵은 보존처리 중 보물로 지정돼 겹경사를 맞았다. 하지만 보존팀은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남 수석은 “보존처리도 어찌보면 위험한 작업일 수 있는 상황에서, 유묵 본지 자체에 변형과 손상 없이 오염된 부분을 클리닝 할 것인가에만 집중해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유묵 종이를 새롭게 장황하는 모습.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유묵 종이를 새롭게 장황하는 모습.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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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실에 오기 전 유묵에는 종이와 족자의 장황(粧?·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만든 화첩 또는 족자) 천의 불균형으로 꺾임과 우는 현상이 있었다. 종이 곳곳에는 곤충 분비물 또한 산재한 상태였다. 안 의사가 유묵을 쓴 시기가 1910년이고, 각각 당대 일본식 표구법으로 족자 제작 후 이를 보관하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필연적인 손상이었다. 남 수석은 “먼저 유묵을 족자에서 완전히 해체해 산화된 배접지를 제거한 뒤 오염 완화 작업에 들어갔다”며 “글씨 부분에는 아교를 바르고 유묵 밑엔 흡습지를 댄 뒤 오염된 부분에 순수한 물, 증류수를 분사해 오염을 제거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오염을 제거한 유묵은 건조 후 종이 유물 보존시 사용되는 전통접착제 고풀(古糊)로 닥지와 호분지에 배접해 건조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작업의 반복 이유는 접착력 때문이다. 남 수석은 “전통접착제는 일반 풀보다 점도가 낮고 접착력이 약한 특성이 있어 반복해서 작업해야 한다”며 “화학물이나 방부제가 첨가된 풀을 사용할 경우 기록물의 먹과 채색 또는 종이에 화학변화가 일어나고 수명이 짧아져 보존이 어려워지는 반면, 고풀을 쓰면 기록물의 변형을 최소화할 수 있어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안 의사 유묵에는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에서 10년 이상 발효시켜 만든 고풀이 쓰였다.


장황 천 또한 천연 소재로 교체해 유묵이 다시 울지 않도록 안정화 작업을 거쳤다. 향후 안전한 보관을 위해 굵게말이축(족자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만든 보호용 도구)과 오동상자를 새로 제작해 작품 보관 환경도 개선했다고 남 수석은 덧붙였다.

안중근 의사 가족 사진첩 내지 훼손부위 복원작업.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안중근 의사 가족 사진첩 내지 훼손부위 복원작업.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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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의사가 뤼순 감옥 수감 중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달래려 보았다고 전해지는 유품인 사진첩 복원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비단으로 싸인 사진첩은 모서리가 닳아있고 덮개가 분리된 채 안에는 안 의사의 부인 김아려와 아들 분도, 준생이 찍힌 빛바랜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첩은 안 의사 재판 당시 통역을 맡은 소노키 스에요시란 인물이 안 의사로부터 직접 받거나 유품 정리 과정에서 입수한 뒤 줄곧 일본에 있다가 2020년 1월 일본인 소장자의 기증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일본 야요이박물관 소장품으로 세상에 처음 소개된 사진첩은 줄곧 덮개를 왼쪽으로 여는 형태로 전시됐다. 남 수석은 “그간의 전시 자료 등을 참고해 사진첩을 살펴봤지만 접합부에 경첩의 흔적이 없었다”며 “해당 사진첩이 제작된 당대 중국 대련 지역에서 제작된 여타 사진첩들을 입수해 분석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복원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보존처리를 마친 가족사진첩 내지.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보존처리를 마친 가족사진첩 내지. [사진제공 = 리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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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 분해 작업 중 문득 ‘왜 옆으로만 열었을까’ 싶은 마음에 혹시 위로 여는 것은 아니었나 붙여보다 답을 찾았다. 남 수석은 “위 아래로 연결된 것으로 놓고 보니 분해과정에서 나온 부속물도 맞고 모든 것이 맞아 떨어졌다”며 “이후로는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는데 닳아진 모서리 부분은 표지의 비단문양에서 나온 실밥 한올 한올을 활용해 메우고, 없어진 부분은 표지와 유사한 비단으로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일설에는 안 의사가 가족이 보고 싶을 때마다 사진첩을 꺼내보느라 모서리가 닳았다고 하는데, 실제 안 의사는 사진첩을 2~3번 본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남 수석은 “사진첩 속 안 의사의 아내와 두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러 하얼빈에 왔다가 한복을 입은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일본 경찰이 현지 총영사관으로 연행해 조사하던 중 촬영한 것”이라며 “사진첩은 당시 뤼순 감옥 관리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형 판결을 받은 안 의사를 안타깝게 여긴 그가 가족사진을 구해 만든 것으로 두세차례 안 의사에게 그가 보여줬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묵 보존처리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수석. [사진 = 김희윤 기자]

유묵 보존처리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남유미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 수석. [사진 =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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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경력의 남 수석을 비롯한 보존연구실의 전문가 2명은 13개월 동안 진행한 보존작업을 두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유묵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고풀을 바르고 건조하는 과정의 반복을 두고 한 말일까, 아니면 110년이란 긴 시간 동안을 헤매다 이제야 고국에 돌아온 유물을 두고 한 말일까. 작업을 마친 소감을 묻자 남 수석은 “사실 난이도가 높은 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외부 소장처 작업이고 오랜 시간동안 해외에 있다 귀환한 안중근 의사의 유물이다보니 마음의 부담이 컸다. 실수해서도 안되고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는 반드시 좋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작업을 끝내고 나니 굉장히 홀가분했다”고 털어놨다.

안 의사 유물 작업을 마친 보존연구실은 이날도 다른 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남 수석은 “이번 작업 이후에도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해외 소재 문화유산 보존 작업 등이 예정돼있는데, 해외에 있는 문화재들이 상태가 좋지 않아 수장고에만 머무는 사례가 많아 이를 한국에서 보존 처리한 뒤 다시 보내는 작업이 주를 이룰 것”이라며 “보존 작업을 통해 한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또 다른 보존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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