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 보수의 '아이돌', 아티스트 될 순 없었나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아이돌(idol)'. '우상'이라는 뜻을 갖는 이 단어는 국내 음악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한때는 '딴따라', '엔터테이너' 취급을 받으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인형 정도의 취급을 받는 이들이었지만, 이제는 글로벌 규모로 커진 K-팝을 이끄는 '아티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아이돌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존재는 누가 있을까. 사면된 후 침묵을 이어오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그런 존재는 한 명뿐이다. 바로 '보수 아이돌'로 불리는 나경원 전 의원이다. 2002년 이회창 대선후보의 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2010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단번에 보수의 '라이징 스타'가 됐다.
'보수 여성 정치인 중 최초'라는 타이틀도 여럿 갖고 있다. 2015년에는 여성 최초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됐고, 3수 끝에 2018년 거대 보수정당의 첫 여성 원내대표가 되기도 했다. 여성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급 인사로 언급되기도 한다. 대중 인지도도 높아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국민 대부분이 그의 이름을 알고 있다. '무플(댓글 없음)이 악플(악성 댓글)보다 무섭다'는 정치권에서는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자산 중 하나다.
그런 그가 25일 당 대표 불출마를 선언했다.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도전을 해 왔던 그를 생각하면 다소 이례적이지만, 불출마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상황을 보면 심경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당내 초선 48인이 사실상 그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사면초가'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를 불출마로 밀어내는 과정 하나하나가 정치와 권력의 비정함을 느끼게 했다.
특히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여성 중견 정치인이라는 데서 더욱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를 축출한 보수 정당 내부의 움직임은 '공당'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칠었다. 박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선 과정에서 네거티브로 일관하다 서로를 무너뜨리는 계기를 제공한 것처럼, 이 역시 두고두고 보수의 상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별의 순간'을 잡지 못하고 불출마를 택한 그의 행보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불출마 이유를 들어보면 더 그렇다. 나 전 의원을 도왔던 박종희 전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죽었다 깨어나도 '반윤(反尹)'은 될 수 없다는 충정"이 그의 불출마 이유 중 하나였다고 털어놨다. 이는 전형적인 '사람에 충성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국회 청문회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골 이미지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 전 의원도 "나는 윤 대통령과 친하지만,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출마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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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윤은 될 수 없다'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라면 반윤도 될 수 있다'는 용기가 필요했다. 저출산고령화사회준비위에서 파격적 '부채 탕감' 방안을 제안했던 그가 왜 자기 포지션은 파격적으로 바꾸지 못했던 걸까. 너무 오랜 정치적 경험이 '관성'으로 작용했던 건 아닐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 정치인의 뒷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인다. 만약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그는 보수의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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