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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용처 속여 교부받은 카드 쓰면 신용카드 부정사용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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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 1항 4호 위반 사례
'기망하여 취득한 신용카드 사용' 명확한 해석기준 제시

대법 "용처 속여 교부받은 카드 쓰면 신용카드 부정사용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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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신용카드 주인에게 사용처를 속여 받아낸 카드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면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 부정사용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형식적으로는 카드 소유자로부터 사용권한을 부여받은 카드를 애초 의도한대로 다른 용도에 사용했을 때 신용카드 부정사용으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하급심에 혼선이 있었는데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제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신용카드 부정사용) 혐의로 기소된 정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판결에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 1항 4호에서 정한 '기망하여 취득한 신용카드'의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2019년 2월 19일 춘천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피해자 박모씨에게 "네 항소심 재판을 위해 변호인을 선임했는데 성공사례비를 먼저 줘야 한다. 며칠 뒤 큰돈이 나오니 영치된 네 명의의 신용카드로 성공사례비를 지불한 뒤 카드대금을 금방 갚겠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사실 당시 정씨는 박씨의 카드로 성공사례비를 내더라도 그 대금을 갚을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박씨의 카드를 생활비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정씨는 같은 해 2월 22일 춘천교도소에서 박씨로부터 신용카드를 교부받아 같은 해 2월 26일부터 3월 25일까지 모두 25차례에 걸쳐 2999만7000여원을 결제했다.


검찰은 사기와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로 정씨를 기소했다. 정씨에게는 사기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범죄전력도 있었고, 약 4000만원을 편취한 또 다른 사기 혐의로도 함께 재판을 받았다.


검찰이 정씨에게 적용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혐의는 제70조(벌칙) 1항 4호의 신용카드 부정사용죄였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제4조 1항 4호는 '강취·횡령하거나, 사람을 기망하거나 공갈하여 취득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판매하거나 사용한 자'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조항이다.


쟁점은 정씨가 박씨에게 '변호사 성공사례비'에 사용하겠다며 허락을 받고 취득한 신용카드를 기망으로 취득한 신용카드로 볼 수 있는지였다.


1심은 정씨의 두 건의 사기 혐의 중 약 4000만원을 편취한 사건에 대해 징역 6개월, 카드를 편취해 약 3000만원을 사용한 사건에 징역 4개월의 실형을 각각 선고했다. 두 번째 사건에 대해서는 사기죄와 별도로 신용카드 부정사용에 따른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죄도 유죄를 인정했다.


정씨가 자력이 없었음에도 박씨의 신용카드로 변호사 성공사례비를 결제한 뒤 그 카드대금을 줄 것처럼 박씨를 속여 카드를 교부받아 자신을 위해 사용한 것은 사기죄와 별도로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죄가 성립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역시 정씨의 2건의 사건에 대해 사기죄 유죄를 인정했지만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첫 번째 사건에 대해 징역 4월, 두번째 사건에 대해 징역 3월을 선고하고 각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사건의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카드를 사용한 동기 및 경위를 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자신의 신용카드 사용권한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비록 카드 사용대금에 대한 피고인의 편취행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카드회사나 카드 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의 사용이 부정사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즉 정씨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박씨의 변호사 비용에 사용하겠다는 정씨의 말에 속아 박씨가 자발적으로 카드를 내어준 만큼, 박씨가 정씨에게 카드 사용권한을 준 것으로 볼 수 있어 실제 다른데 사용됐더라도 카드를 부정하게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다시 결론을 뒤집었다.


먼저 재판부는 "법률을 해석할 때 입법 취지와 목적,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논리적 해석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돼 있다면 원칙적으로 이러한 해석 방법은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 1항 4호의 '기망하거나 공갈하여 취득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는 문언상 '기망이나 공갈을 수단으로 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취득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라는 의미이므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를 기망하거나 공갈하여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지 않고 점유가 배제되어 그들로부터 사실상 처분권을 취득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라고 해석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법원은 "피해자 박씨는 피고인 정씨로부터 기망당함으로써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지 않고 이 사건 신용카드에 대한 점유를 상실했고, 정씨는 이 사건 신용카드에 대한 사실상 처분권을 취득했다고 봐야 한다"며 "따라서 이 사건 신용카드는 정씨가 이 사건 신용카드의 소유자인 박씨를 기망해 취득한 신용카드에 해당하고, 이를 사용한 정씨의 행위는 기망하여 취득한 신용카드 사용으로 인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런데도 원심은 박씨가 정씨에게 이 사건 신용카드 사용권한을 줬다는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다"며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 1항 4호에서 정한 '기망하여 취득한 신용카드'의 해석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즉 '기망하여 취득한 신용카드'는 법문 그대로 '카드 소유자나 점유자를 기망해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지 않고 점유가 배제돼 그들로부터 사실상 처분권을 취득한 신용카드'로 해석해야 하며 형식상 카드 사용권한을 부여받았는지 여부는 신용카드 부정사용죄 성립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그 구체적 의미와 관련해, 피해자의 기망된 의사에 기해 점유를 취득한 자(형식적인 사용권한을 부여받은 자)의 신용카드 사용이 여신전문금융업법위반죄를 구성하는지에 관해 하급심에서 혼선이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 1항 4호에서 정한 '기망하여 취득한 신용카드를 사용한 자'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히 판시함으로써, 위와 같은 논란을 종식하고 하급심에 구체적 판단기준을 제시했다"고 의의를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2006년 "여신전문금융업법 제70조 1항 4호에서 부정사용이라 함은 강취, 횡령, 기망 또는 공갈로 취득한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를 진정한 카드로서 본래의 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강취, 횡령, 기망 또는 공갈로 취득한 신용카드라 함은 소유자 또는 점유자의 의사에 기하지 않고 그의 점유를 이탈하거나 그의 의사에 반하여 점유가 배제된 신용카드를 가리킨다고 봐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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